9일 새벽 5시 서울 영등포 로터리 근처의 직업소개 사무실.

노천 인력시장이 사라진 공백을 메우고 있는 이곳에는 옷가방을 둘러멘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작업복 차림의 일용직 근로자 40여명이 순식간에 10여평 남짓한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30분쯤 지나자 공사현장의 일꾼을 구하는 작업반장 대여섯명이 사무실에 들어섰다.

이들은 비교적 젊은 사람들에게 공사 경험이 많은지 간단히 물어본 뒤 3~4명씩 봉고차에 태웠다.

일꾼들을 태운 차가 모두 떠났지만 사무실에는 여전히 18명이나 남았다.

간간이 울려대던 전화벨 소리도 오전 6시를 넘기면서 뚝 끊겼다.

남은 사람들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연신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이들은 1시간 가량의 시간이 속절없이 흐른 뒤에야 발길을 돌렸다.

이 직업소개소의 나양하(52)소장은 "작년말까지만 해도 하루 1백여명이 순식간에 일거리를 잡을 정도였는데 요즘은 40여명이 나와도 절반을 소화하기가 버겁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새벽 인력시장은 지난해말까지만 해도 1백명이상 모이는 곳이 20여곳에 달했다.

중구 남대문시장 입구,영등포 로터리 주변,관악구 난곡 도깨비시장앞,종로구 창신노천시장,양천구 신정사거리 등은 꽤 유명했다.

하지만 건설업계에 불황이 닥치면서 새벽 인력시장이 대부분 사라졌다.

인력파견 사무실이 그 일을 대신하고 있다.

그것도 휴대전화 보급이 확산되면서 미리 연락처를 알려준 뒤 전화로 일자리를 받는 형태로 바뀌었다.

서울근교 아파트 신축 지역이나 외곽고속도로 건설공사장 인근에서만 수시로 소규모 인력시장이 설 정도다.

인력시장에서조차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게 되자 대규모 건설공사 현장과 연계가 잘 돼있는 노동부 산하 1일취업센터를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구직이 어렵기는 이곳도 마찬가지.

전국적으로 구인·구직을 연결하기 때문에 일자리는 많지만 대부분이 지방이어서 먼곳을 찾아가 일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서울 창신동의 중부 1일취업센터 관계자는 "경기가 나쁠수록 공공취업센터를 찾는 사람이 늘어난다"며 "요즘은 서울지하철 6호선 공사현장에 인력을 대고 있어 상황이 괜찮은 편이지만 공사가 끝나는 11월 이후엔 일감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금도 작년보다 크게 떨어졌다.

일용직 노동자들이 오전 6시부터 12시간 일하고 받는 일당은 대략 5만5천원선.

5천원을 직업소개소 몫으로 떼주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5만원.

목수나 형틀 철근 골조 등을 다루는 ''고급기술자''는 형편이 좀 낫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 하루 10만원하던 일당이 요즘은 7만∼8만원으로 낮아졌다.

이날 단독주택 공사에 벽돌나르기 일거리를 얻어 나간 이모(30)씨는 "시골에서 올라온 4∼5명의 사람들과 함께 하룻밤 3천원하는 하숙방에서 지내고 있다"며 "하루 일과를 끝내고 반장에게 다음날 꼭 불러달라고 사정해야 막일이라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김포에서 일거리를 찾아 영등포 직업소개소를 찾았다가 이날도 ''꽝''을 친 최모(50)씨는 "올 여름부터는 사무실 개조나 이삿짐 정리 같은 하루이틀짜리 반짝 일거리도 구하기 힘들다"고 한숨지었다.

그는 "공사판에 나갔다가 1주일짜리 일자리를 얻으면 ''대성공''이지만 요즘같아선 꿈같은 얘기"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