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문 < 포항공대 교수 >

새로운 천년을 맞으면서 어릴 적 설날을 떠올린다.

지금부터 60여년 전,내 나이 열살이 채 안되었을 때였다.

시골집에서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과 차례를 지낸 뒤 서로의
나이를 따져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나는 2000년까지 살아 새로운 밀레니엄을 구경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 소망을 가진 것은 70세까지 살고자 하는 생물학적 욕망 때문만이
아니라 2000년이라는 달력의 숫자가 갖는 마술적 의미를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연적인 시간에 마디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사회적 약속이라는 단위가 매겨짐으로써 자연의 시간은 문화적
시간으로 변하고 인간적인 의미도 제대로 갖는다.

천년이라는 단위는 한 민족사만이 아니라 인류사에 비춰봐도 무척 높은
시간적 산맥이다.

이런 점에서 천년, 2천년이라는 시간적 봉우리는 누구에게나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한 시간적 산정에 올라설 수 있는 인간은 축복받은 셈이다.

당시의 평균 수명으로 보아 가능성이 희박했던 내가 2000년이라는 시간의
산정에 오른 것도 따지고 보면 각별한 축복이다.

우리는 지금 막 2000년의 산정에 올라 21세기를 맞이하고 있다.

20세기가 개인과 가족, 사회.역사적으로 보아 한없이 험하고 숨찬
것이었다는 점을 인정할 때 내가 쓰러지지 않고 오를 수 있었다는 사실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점에서 나는 자부심을 느낀다.

그 어려운 시절 군대에 가서도 낙오하거나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눈앞에 전개되는 미지의 세기, 세번째 밀레니엄의 산맥들을 호기심과
희망으로 바라보며 이제 새로운 결의까지 다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어 올라온 20세기의 험악한 산길을 돌아보는 순간, 내
몸을 뜨겁게 했던 땀방울들이 내 마음을 차디차게 식힌다.

어느새 나의 자부심도 부끄러움으로 변하고 기쁨은 쓸쓸함으로 바뀐다.

20세기는 인류사의 관점에서 비극과 발전, 어둠과 햇빛이 극단적으로
교차한 격동의 시대였다.

우리는 전통적 농경사회에서 개항, 식민지화, 해방, 남북분단, 두 개의
상극하는 정부, 전세계가 관련된 6.25, 군사정권, 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반세기도 안돼 최신 산업체제를 갖추고 선진국 문턱에 다가섰다.

그동안 우리가 치러야 했던 생존경쟁의 고통이 얼마나 컸던가는 새삼
상기할 필요조차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앞의 개인적 이익과 안정을 위해 역사의 물결에 등을
돌리고 개혁을 거부하는 동안, 많은 선각자들이 나라를 개명의 길로 이끌려다
젊은 나이에 희생됐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타의반 자의반 친일파나 협동자로 떠밀릴때 잃어버린
민족의 자주성과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도 많았다.

분단조국의 통일 혹은 자신들이 믿는 이념을 위해 투쟁하던 아버지들로
인해 수많은 자녀와 동생이 교육도 받지 못하고 사회의 밑바닥에서 소외
되었다.

전쟁때 특권층 자녀들과 처세에 빠른 친구들이 외국유학을 떠나거나
병역을 요리조리 피해가는 동안 몇십만의 젊은이들은 포화속에서 불꽃처럼
사라졌다.

한편에서 고시공부를 하든가 박사학위를 받아 출세하려고 부와 권력의
길을 닦고 있는 동안 그들의 동급생들은 민주항쟁의 대열에서 최루탄을
맞으며 화염병을 던지다가 옥고를 치르고 졸업 후에도 갈 곳없는 실업자가
되었다.

이러한 격동의 20세기에 내가 태어나고 여태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극단적으로 말해 조부와 부친이 애국투사 대열에서 빠졌거나 혹은 약간의
친일파가 아니고서는 가능했을까.

21세기까지 70이 되도록 생존했다는 사실은 군복무를 했더라도 약삭빠르게
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아니,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살 수 있었던 것만 해도 전쟁 때 병역을
피하려 몸을 움츠리거나 민주항쟁에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역설적인 것같지만 우리 모두의 아픔이 이런 역사에서 싹텄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사실은 나의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움인
것이다.

비록 이러한 가설들이 틀렸다 하더라도 20세기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21세기를 맞게 된 지금, 우리는 진지한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가혹한 70여년을 살아냈다는 사실은 내가 바퀴벌레처럼 지독한
생존력을 가진 동물이었으며, 그러한 동물적 생존력을 가졌다면 나는 아주
독한 놈이었음에 틀림없다.

20세기를 회고하며 70세가 넘도록 살아남은데 대해 승리감과 기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패배감과 슬픔을 감출 수 없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난 20세기의 한국은 모든 인간이 인간으로보다는 동물이 되어야 생존할
수 있었을 만큼 가혹한 경쟁을 필요로 하는 세상이었다.

21세기는 보다 덜 경쟁적이고 덜 투쟁적이면서 보다 더 협동적이고
인간적인 세기가 되기를 바란다.

한국은 물론 전세계에서 다음 세대들이 70세를 맞아 21세기의 시간적
산봉우리에 올라갔을 때 그렇게 살아남은데 대해 지금의 나와는 분명
달라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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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 충남 아산 출생(1930)
<> 서울대 불문과 졸업(1955)
<> 프랑스 소르본대 불문학박사(1964)
<> 시몬스대 교수(1993)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