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북파주 농협앞.

황톳물이 삼켜버린 마을 입구는 선착장과 같았다.

멀리 보이는 상가의 1층 높이까지 물이 가득차 있었다.

전신주에 걸린 플랭카드조차 손에 닿을듯 낮게 걸려 있었다.

온통 물바다였다.

비는 좀처럼 그칠줄 몰랐다.

그러나 구조작업은 결코 늦출수 없었다.

이날부터는 해병 수색대가 인명구조 작전에 투입됐다.

전문가들이 가세하면서 구조작업은 아연 활기를 띄었다.

이날 동원된 병력은 보병 제1사단 공병대 80명과 해병 2사단 수색대
1백58명 등 2백38명.

해병대원들의 얼굴은 시커먼 잠수복보다 더 검었다.

강훈련을 받았다는 증거였다.

이들은 보트에 나눠타고 시가지 곳곳을 누볐다.

상황은 당초 예상보다 급박했다.

태풍 올가로 폭우가 또 올수 있기 때문이었다.

빠른 구조가 지상명령이었다.

현장에서 작전을 지휘한 1사단 인사참모 김봉수(45)중령은 "태풍으로 인한
추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인명구조 작전을 신속히 진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고 말했다.

섬처럼 변한 도시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지치고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들것에 실려나온뒤 곧바로 대기중이던 구급차에 실리는 사람도 적지않았다.

가족과 친지를 남겨두고 혼자 탈출한 주민들도 발을 구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구조대원들에게 집 주소와 사람 이름이 적힌 쪽지를 건네주면서 구조를
요청하는라 정신이 없었다.

일부는 생수통과 휘발유를 들고 해병대원들과 함께 직접 구조작업에 나서는
"용기"를 보이기도 했다.

가족과 함께 구조된 김연홍(43.여)씨는 "갑자기 불어난 물 때문에 지난
31일밤부터 나흘간 집에 갇혀 있었다"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두렵고
불안했었다"고 회상했다.

구조상황을 애타게 지켜보던 김정순(48.여)씨는 "동생이 어린아기와 함께
남아 있다"며 빠른 구조를 요청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아침 탈출에 성공한 그녀는 "느닷없이 집이 물에 잠기는 바람에 돈도
챙기지 못하고 몸만 간신히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구조된 주민중에는 상을 당한뒤 장례식도 못 치룬채 쩔쩔매던 가족들도
있었다.

나흘째 고립됐던 이들은 고인의 영정을 든채 시신이 담긴 관과 함께 배를
타고 실려나왔다.

"뭍"에 닿자마자 의무차에 관을 실은채 즉석에서 제사를 지냈다.

상주인 고홍연(52)씨는 "뒤늦게나마 돌아가신 부친의 장례를 치를수 있게돼
다행"이라며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안선호(46)씨는 "물과 전기가 완전히 끊겨 매우 고통스러웠다"며 "해마다
되풀이 되는 재앙에 그저 착잡할 뿐"이라고 털어놨다.

"비만 오면 도망쳐야 하니 우리가 무슨 죄인이냐" "해마다 반복되는 연례행
사에 이젠 신물이 난다" 이웃들이 구조되는 광경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 문산=이건호 기자 leek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