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밤 9시께 박상길 서울지검 특수1부장이 기자실에 내려왔다.

일순 긴장감이 감돌았다.

특수1부장이 밤에 기자실에 내려오는 경우는 급한 사건처리외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박 부장은 들어오자마자 "신동아그룹 최순영회장을 소환조사중"이라고
말했다.

최회장에 대해 검찰이 오랜동안 수사해온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기자들은
"왜 갑작스럽게 최회장을 소환했느냐"고 물었다.

그의 "이제 소환할 때가 돼서"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사실 최회장의 1억6천만달러 국외도피건은 지난해 6월 이미 수사가 완료돼
사법처리 시기결정만 남아있었다.

당시 출입기자들이 즉각적으로 보도하지 않은 것은 신동아그룹의 주력계열사
인 대한생명의 10억달러 외자유치협상때문이었다.

당시는 IMF환란으로 한푼의 외자도입이 아쉬웠던 때여서 출입기자와 검찰이
엠바고(보도자제)약속을 하고 최회장수사건을 보도하지 않았다.

기자단과 검찰은 모두 수사가 외자유치에 걸림돌이 돼서는 안된다는데
인식을 같이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7개월여 뒤인 10일 검찰이 갑작스럽게 최회장을 소환조사
중이라고 발표한데 대해 뒷말이 많다.

"왜 하필 지금"이라는 게 주류다.

이에 대해 검찰은 대한생명과 메트로폴린탄생명보험사간의 협상이 아무런
진척이 없어 더이상 검찰권행사를 미룰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협상->실사->재협상->재실사 등이 반복돼 외자협상이 실현될
가능성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

게다가 검찰은 "외자유치의 확실성을 심어줄 의무는 신동아측에 있지 검찰이
신동아측의 사정을 이해할 의무는 없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사실 검찰이 외자유치를 위해 많이 봐준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대한생명이 7개월이라는 기간동안 외자유치협상을 합의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그러나 외자유치는 1년이상이 걸릴 수도 있고 그보다 더한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

이때문에 검찰이 이왕 봐주기로 했으면 좀더 시간을 주는 것이 옳았을지
모른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만일 대전비리사건으로 일그러진 검찰상을 대형사건처리로 만회하기 위해
최회장 소환을 전격적으로 결정했다면 더욱 큰 문제다.

외자유치건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대한생명의 약점을 잡은 메트로폴리탄생명이 주도권을 휘두르게 됐다.

적전분열은 아닐까.

< 이심기 사회부 기자 sg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