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이종기 변호사사건이 사법파동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직 고검장이 대전사건의 왜곡을 주장하며 수뇌부의 퇴진을 요구했고
소장판사들도 은밀히 긴급모임을 갖는 등 사법사상 유례가 없는 일들이
27일 밤 벌어졌다.

특히 검찰은 대검중수부장을 지낸 심재륜 고검장이 수뇌부사퇴라는 폭탄
선언을 하자 수뇌부가 이날밤 다시 출근하는 등 총비상령이 내려졌다.

검찰은 심 고검장외에도 사표를 종용받고 있는 검사들과 일부 소장검사
들도 반발하고 나서 검찰조직의 와해까지 우려되고 있다.

<>.심재륜 대구고검장의 돌발적인 행동에 검찰은 마치 "검란"에 휩싸인
듯한 분위기다.

현직 고검장의 갑작스런 돌출행동에 검찰수뇌부는 경악을 금치 못한채
하극상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원성 차장은 심 고검장의 회견이후 가진 긴급회견에서 "자신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행동"이라며 반격, 원수를 대하는 듯한 모습에서 충격의
정도를 읽을 수 있었다.

<>.항공편으로 대구에서 상경한 심 고검장은 이날 오후 5시50분께 서초동
대검청사에 도착한 뒤 감찰부 조사실이나 총장, 차장실이 있는 본관 건물로
가지 않고 별관 1층 기자실을 곧바로 방문, 비장한 심정임을 드러냈다.

심 고검장은 미리 준비한 유인물을 뿌린 뒤 격앙된 어조로 검찰수뇌부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자신들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희생양을 양산하고 있는
수뇌부들"이라는 등 검찰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표현을 불사했다.

그는 또 자신에 대한 사표종용이 차기 총장 인선구도와 관련된 모종의
기도라는 음모론까지 주장했다.

<>.심 고검장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2년전 같은 자리에서 김현철씨
비리사건 수사를 브리핑하던 때를 회고하기도 했다.

"이종기 변호사는 압박감으로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그런 진술로
나를 얽어매려 하다니"라며 가쁜 숨을 몰아쉬던 그는 "나는 5년전 허름한
카페에서 폭탄주 한잔 같이 마신 것밖에 없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20여분 정도 지나 심 고검장이 자리를 빠져 나가고 곧이어 이원성
대검차장과 김승규 감찰부장, 이승구 중수1과장 등 대전사건 수사지휘부가
한꺼번에 기자실을 찾았다.

이 차장검사는 "당황스럽다"고 한마디 꺼낸 뒤 한참동안 분을 삭이지
못했다.

고검장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느냐며 겨우
말을 이어가던 이 차장은 "심 고검장은 이 변호사가 가장 호황을 누리던
시절에 함께 10여차례나 술집에 드나들었다"며 사표종용 배경을 설명했다.

수사 관계자는 심 고검장이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정도의 비위를 저질렀음
을 조목조목 제시했다.

<>.소장판사 10여명은 이날밤 서초동 법원청사 인근에 있는 모 음식점에서
긴급회동을 갖는 등 심상찮은 모습을 보였다.

대법원 P모 판사 등 10여명은 이날 오후 6시 이 음식점에서 긴급대책마련
모임을 갖기 위해 모였으나 기자들이 낌새를 알아차린 것을 알고 장소를
옮기는 등 007작전을 방불케 했다.

이후 판사들은 다시 인근 음식점에서 회의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행정처는 이날 오후 5시께 갑자기 대법원및 법원행정처로 들어오는
차량에 대한 통제를 실시, 출입자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이날 5시30분께 대법원정문을 통해 차를 몰고 들어오던 법원기자들은
수위들의 출입저지에 차를 돌려야 했다.

법원행정처의 이날 조치는 소장판사들이 이곳에서 모임을 가질 것이라는
설과 맞물려 대법원 주변에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 고기완 기자 dadad@ 김문권 기자 mk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