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종현 SK회장의 영결식이 30일 오전 8시 고인의 자택인 서울 광장동
워커힐빌라 앞 제이드가든에서 열렸다.

이날 영결식에는 고인과 사돈간인 노태우 전대통령 내외와 김우중 전경련
회장대행 등 각계 인사와 SK그룹 및 전경련 임직원 등 모두 7백여명이 참석
했다.

재계에선 구평회 무협회장 김창성 경총회장 등 경제단체장과 김각중 경방
조석래 효성 장치혁 고합 신명수 신동방 회장, 송인상 전경련고문 조양호
한진부회장 등이 눈에 띄었다.

이승윤 전부총리 최병렬 전서울시장 박용정 한국경제신문사장 등 정.관계
및 언론계 인사 등도 다수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영결식장이 마련된 제이드가든에는 오전 7시가 넘으면서 김우중 전경련
회장대행과 김창성 경총회장 등 재계인사들이 속속 도착했다.

오전 8시께 노태우 전대통령 내외에 이어 상주인 최태원 SK부사장 등이
입장, 관현악단의 추모연주가 울려퍼지는 숙연한 분위기속에 영결식이 시작
됐다.

사회는 고인이 후원한 MBC TV "장학퀴즈" 사회자로 인연을 맺은 차인태
경기대교수가 맡았다.

김항덕 SK부회장은 약력보고 도중 목이 메는듯 자주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어 고인이 지난 96년 12월 국가경쟁력강화민간위원회 금융실업 선진화
전략세미나에서 행한 강연과 95년 신년사, 올해 1월 그룹 신CI선포식에서
행한 연설 등을 담은 생전의 육성녹음이 흘러나오자 유족들 가운덴 흐느끼는
이들이 늘어갔다.

<>.김우중 회장대행을 시작으로 다섯명이 추도사를 읽어나가자 영결식은
더욱 숙연해졌다.

김우중 회장은 "시대를 앞서가는 경영철학과 예견으로 한국경제의 이론과
실제를 접목시킨 진정한 경영의 선구자였다"고 고인을 기렸다.

도요타 쇼이치로 일본 게이단렌 명예회장은 자신보다 30~50야드나 멀리
나가는 드라이브 샷을 날리던 고인을 회고하며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도
지금이야말로 당신의 활력과 리더십을 필요로 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고인과 40여년 지기인 홍사중 조선일보 논설고문은 "내가 산돼지라고 별명
지을만큼 건강하던 형의 저승길을 애도하는 조사를 읽기위해 섰다"고 애통해
했다.

그는 "은퇴후 세계 제일가는 곰탕체인점을 만들어 음식은 형이 하고 나는
지배인이 되겠다는 농담도 주고받았다"며 고인을 회고했다.

그는 "이제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부인곁에 가서 푹 쉬라"며 "그래도
심심하면 나를 부르시오"라고 말해 현실과 피안을 오가는 우정의 깊이를
드러냈다.

이어 고인이 사재를 들여 설립한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 출신인 염재호
고려대교수는 고인의 도움으로 2백여명의 해외 명문대 박사가 배출됐고
1백50여명이 현재 공부하고 있다며 ''큰 그늘막이 되어준 스승''으로 고인을
기억했다.

이밖에 SK 임직원을 대표해 손길승 SK텔레콤부회장이 추도문을 읽었다.

또 9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개리 S 베커 미국 시카고대 교수와 9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E 루카스 시카고대 교수 등 해외저명인사들이
조문을 보내왔다.

<>.영결식에 앞서 오전 7시 고인의 시신은 벽제로 옮겨졌다.

지난해 사망한 부인 박계희여사의 유해도 이날 새벽 6시 수원 가족묘지에서
벽제로 옮겨져 화장됐다.

영결식 후 고인의 영정봉송과 함께 유족들은 벽제로 이동, 유해와 함께
차량편으로 SK사업장과 전경련회관 생가 등지에서 노제를 지냈다.

운구차량은 낮 12시40분께부터 을지로 SK상사, 여의도 SK주식회사 전경련
회관, 수원 SK케미칼과 SKC공장, 평동 생가를 돌았다.

SK 계열사 사옥과 전경련회관에는 임직원들이 나와 고인의 마지막 가는
운구행렬을 지켜보며 묵념으로 추모했다.

유족들은 오후 5시께 수원 봉담면에 있는 가족묘지에 고인과 부인 박계희
여사를 합장했다.

< 권영설 기자 yskw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