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보따리장수들이 썰물처럼 한국을 빠져나가고 있다.

러시아가 모라토리엄(대외채무지불유예)을 선언한데다 최근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이 일률적으로 3%포인트 올라 한국상품에 대한 구매력이 떨어진
때문이다.

여기에 원화가치가 크게 오른데다 한.러 외교분쟁까지 겹쳐 러시아 보따리
장수들은 한국을 점점 외면하고 있다.

지난6월까지만 해도 러시아 보따리장수로 매일 북적대던 서울의 동대문상가
동평화상가 동화시장 부산의 텍사스촌 등은 최근들어 한산한 모습이다.

동대문상가에서 15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한기춘씨는 "6월부터 매출이
급감하기 시작해 이달은 지난3~4월의 10%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지난달말에
오기로 약속한 러시아 보따리장수가 아직 소식이 없다"고 걱정했다.

동평화상가에서 셔츠종류를 판매하는 김순희씨는 "원화가치가 최근 너무
올라 러시아 보따리장수의 구매력이 크게 떨어졌다"며 "특히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매출이 더욱 급감할 것으로 보여 문을 닫아야할 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러시아 보따리장수들이 상품구매로 쓰는 달러는 많게는 하루에 1백~2백만
달러 규모.

이들은 싸구려 의류로부터 가전제품, 중고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현금으로
최고 10만달러까지 구입하는 작지만 큰 손이다.

국내경기 침체로 내수가 거의 마비된 상태여서 동대문시장 텍사스촌 등은
러시아 보따리장수에 사실상 거의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러시아 보따리장수들이 지난달부터 발길을 거의 끊어 상인들은
걱정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동평화시장내에 위치한 국민은행 평화지점 김용신 지점장은 "최근 러시아
보따리장수의 감소는 여름철 비수기의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인다"며 "환율과
러시아 국내사정이 가장 큰 변수"라고 말했다.

대한무역투지진흥공사는 지난4월 올해 한국을 찾는 러시아상인 등 보따리
장수를 지난해(3만명)보다 훨씬 많은 4만~5만명으로 예상했다.

무공은 그러나 최근 러시아 보따리장수는 3만명, 상품 구입액도 3억달러로
지난해 수준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 김문권 기자 mk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