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다 죽었어요.

가을에 내놓기위해 그동안 정성을 다해 키운건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10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조리면.

이곳에서 10년간 화훼농을 해온 이봉기(65)씨는 흙탕물을 뒤집어쓴 꽃들을
보면서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부인 김순례(53)씨도 꽃에 묻은 흙을 하나하나 털어내면서 안타까워했다.

수마가 이씨의 비닐하우스를 덮친 것은 지난 6일 새벽 5시.

이웃 사람들의 떠들썩한 소리에 잠을 깬 이씨는 가재도구 하나 챙기지
못하고 몸을 피할수밖에 없었다.

밤새 불어난 봉일천둑이 터지면서 순식간에 비닐하우스를 삼켜버렸다.

다음날 오후 물이 빠진 뒤 비닐하우스로 돌아온 이씨는 처참한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난방을 위해 사놓은 연탄은 형체를 알아볼수 없게 엉켜있었고 가격이
오른다고해서 미리 2백만원어치나 사놓은 기름은 다 떠내려가고 없었다.

물과는 상극인 시크라멘 꽃은 이미 누런색으로 변해 있었다.

수익성이 높아 다량재배했던 게발선인장 역시 손을 대면 힘없이 잎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생명력을 잃었다.

난방기계도 마찬가지.

물속에서 멀쩡하게 살아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1천여평에 7개 비닐하우스를 운영하고있는 이씨가 이번 수재로 입은 피해는
어림잡아 6천만~7천여만원.

도매상에게 한개 2천원씩 받을수 있는 시크라멘과 게발선인장 4만여개가
모두 죽었다.

이씨뿐만이 아니다.

지난 5일부터 6일 이틀간 5백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 파주시 1백20여개
화훼농가는 대부분이 물에 잠겨 이씨와 비슷한 처지가 됐다.

파주시청은 그러나 아직 물이 다 빠지지않아 피해액조차 산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기예보에서 비가 많이와야 1백50mm가 온다고 해서 큰 대비를 하지
않았어요"

기상청만 믿다가 전혀 대비를 하지 못했다며 부인 김씨는 허탈해했다.

< 김태완 기자 tw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