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앗아간 내집마련의 꿈은 비단 서민들만이 아니다.

내년 1월 창립 1백주년을 앞둔 국내 최고은행중 하나인 상업은행의 초현대식
본점마련의 꿈도 빼앗아버렸다.

한창 신축중인 서울 회현동 본점건물을 구조조정차원에서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

상업은행은 신세계백화점 맞은편에 있는 현재의 본점이 비좁아 직원들이
4~5개 빌딩에 흩어져 서글픈 셋방살이를 해오고 있다.

조선시대말인 1899년 설립돼 1백년이란 굴곡의 역사를 접고 또 하나의
세기를 산뜻하게 출발하려는 상업은행의 꿈이 차질을 빚게 된 셈이다.

IMF관리체제이후 거래기업들의 잇단 부도로 경영에 타격을 입은 상업은행은
이 빌딩을 미화 3억5천만달러(약 5천억원)에 내놓았다.

최첨단 인텔리전트빌딩으로 5월말현재 80%의 공사진척을 보이고 있으며 올
연말 완공예정.

세계적인 건축설계회사 일본 닛켄세케이와 신진엔지니어링이 공동설계했으며
진도 7의 강진에서도 견딜 수 있는 완벽한 시설을 갖추었다.

크고 작은 4개의 탑이 모여 하나의 건물을 구성한 이 빌딩은 내부 정중앙이
지상 24층부터 1층까지 오픈돼 각 층이 모두 자연채광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건물은 외관도 외관이지만 "땅"에 얽힌 여러가지 얘기를 갖고 있다.

이 터가 소문난 명당이라는점.

조선 순조때 쓰여진 "한경지략"이란 책에는 이 땅에 있는 5백년된
은행나무에 대한 전설을 담고 있다.

신인이 이 나무에 정승만이 찰 수 있는 띠를 12개 걸었다는 것.

실제 조선 중종때 영의정 정광필에서부터 순종때 우의정 정범조까지 여기에
집이 있던 동래정씨 문중에서 정확하게 12명의 정승이 나왔다.

"인걸은 지령"이란 풍수속담이 꼭 들어맞은 셈.

실제 지난 95년1월 기공식을 갖고 땅을 파 내려가자 그 속이 황금색
토양으로 꽉차 있어 역시 동래정씨였던 정지태 당시행장 등 관계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명당"터에 초현대식으로 짓고 있는 본점빌딩을 파는 상업은행의 마음은
편치않을 게다.

세일&리스백(매각후 재임차방식)으로 매각할 경우 본점 입주야 가능하겠지만
내집과 셋집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

"1백년 은행"이 자기 집을 짓다말고 파는 모습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도
상업은행직원들과 다름아니다.

< 육동인 기자 dongi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