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빚지지 말라 ]]

"빚지고 울지말고 푼푼이 저축하자"

촌스럽게 들릴 수 있는 이 구호는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60년대
유행하던 표어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IMF를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아이러니컬
하게도 이 표어에 담겨 있다.

조금이라도 여유있을 때 저축하고 남의 돈은 쓰지 않는 게 최고라는 의미다.

실질소득 감소로 사회 각 부문이 10년 정도 뒷걸음질한 요즘 우리사회의
딱한 처지를 잘 나타낸 말이기도 하다.

대기업 그룹 계열사의 입사5년차인 정모(31)대리.

풍족하진 않아도 큰 어려움은 몰랐던 그였지만 IMF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월급이 준데다 연 6백%의 상여금도 대폭 삭감되는 등 실질소득이 엄청
줄면서 변화는 시작됐다.

월급만으로 살다보니 자동차할부금 내기도 빡빡해졌다.

2년째 몰고 있던 승용차를 헐값에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할때 은행에서 빌린 주택대출금 원리금상환에 들어가는 30만원 말고는
다른 지출은 아예 없애버렸다.

대신 나머지를 몽땅 신종적금신탁에 붓기로 했다.

그리고 또하나는 아무리 경제적으로 쪼들리더라도 주위에서 돈을 빌리는
일은 절대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얼마전 같은 회사동료인 김모(30)대리가 악덕사채업자로부터 돈을 빌려쓰고
곤욕을 치르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김 대리는 폭력조직과 연결된 사채업자로부터 온갖 모욕적인 욕설을 듣는
것은 물론 빚을 제때 갚지 않으면 가족들까지 죽이겠다는 무시무시한
협박까지 들어야 했다.

빚의 무서움을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일본에서는 지난 90년 시작된 헤이세이 불황이후 자살이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중년층의 자살률이 높아졌는데 대부분 "빚"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도 IMF이후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빚으로 주식에 투자했다 수억원의 손해를 본 가장이 가족들과 동반자살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요즘같은 고금리시대 "빚쟁이"는 열심히 벌어 남 이자주고 그것도 안돼
또 빚을 내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고 만다.

요즘엔 대학가조차도 순진한 대학생들을 표적으로 한 악덕사채업자들의
돈놀이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학가 무이자 무담보 신용대출"이라는 스티커를 학생회관 게시판이나
화장실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일단 돈을 빌려쓰면 대출기간이 짧고 이율이 높아 "고리채의 함정"에서
쉽게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게 S대 김모(23)군의 설명이다.

사채업자뿐 아니라 전당포도 문전성시를 이룬다.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어쩔 수 없이 물건을 맡기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찾아가는 사람은 드물다고 전당포 주인들은 말한다.

최근 우방이 1백23명의 일반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결과는 IMF이후
샐러리맨들의 얇아진 주머니 사정을 잘 보여준다.

응답자의 65%가 IMF 이전보다 용돈이 삭감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IMF 이전에는 한달용돈 20만원이하가 전체의 57.8%정도였지만 IMF
이후엔 82.9%로 대폭 늘었다.

또 가장 크게 느끼는 애로사항으로 전체의 69.9%가 생활비문제를 꼽았다.

집에서 모르는 개인적인 부채가 생겼는지 여부에 대해선 "많이 발생
(14.9%)"과 "조금 발생(42%)"으로 집계돼 절반이상이 새로운 채무가 생긴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 옛말에 "빚쟁이 각시 얻기"란 말이 있다.

이는 구한말 빚을 많이 진 사람이 빚을 갚지 못했을때 나이가 찬 딸이나
마누라를 빚쟁이에게 뺏겼던데서 유래했다.

감당 못할 빚을 지면 색시까지 잃을수 있음을 경고한 속담이다.

지난해말 우리나라를 덮친 IMF도 따지고 보면 외국에 진 "빚"을 제때 갚지
못해 촉발된 것이다.

채무가 과도하면 나라를 잃을 수도 있음을 IMF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 김재창 기자 char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