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3가에서 20년째 시신닦는 염을 해주는 임재구씨(46).

그는 걸려온 전화를 끊으며 "요즘같은 희한한 세상은 처음 본다"고
혼자말을 한다.

시체닦는 일자리가 없느냐는 실직자들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어서다.

그는 염하는 일이 인기직종이 된 줄 요즘에야 깨달았다.

그만큼 IMF이후 장의사업계에도 불황이 몰아치면서 일자리구하기가
힘들어졌다.

임씨가 몸담고있는 종로 장의사만해도 불황으로 감원해야했다.

19명의 염하는 사람중 11명을 내보냈다.

평소 이직이 잦던 염하는 사람들도 요즘은 모두 붙박이다.

나가봐야 다른 일이 없어서다.

부산 용당동에 있는 한국해양수산연수원 훈련생 김인철씨(34).

이달초부터 6개월과정의 원양선원교육을 받고있다.

집에 처자식을 남겨두고 기숙사생활을 하고있다.

김씨는 지난 1월까지만해도 중소기업사장이었다.

부산 사상공단에서 종업원 50여명을 거느리고 소프트웨어업체를 경영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IMF라는 "괴물"이 삼켜버렸다.

연쇄부도로 자금난에 봉착, 문을 닫게된 것.

김씨는 생계를 걱정한 나머지 배를 타기로 결심했다.

김씨는 요즘 잠자리에 들때면 철없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을
훔치곤한다.

이럴때마다 김씨는 "무엇을 해서라도 꼭 재기하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한국해양수산연수원에서 김씨처럼 선원교육을 받고있는 다른 50여명도
사정은 비슷하다.

자영업자 대기업직원 교사 자동차회사조립공 등 출신이 다양하다.

실직전엔 이들도 번듯한 직장인이었다.

벼랑끝으로 내몰린지금,이들에게 과거 직업은 의미가 없다.

살기위해서라면 힘들다는 원양선일도 감지덕지다.

올들어 선원월급이 절반수준으로 떨어졌는데도 말이다.

이제 대표적 3D업종이던 원양선원직도 하늘의 별따기다.

한국해양수산연수원 지상현(45)교무과장은 "지난 4월 원양선원교육과정으로
50명을 모집했는데 1백73명이 응시했다"며 "모집인원의 절반도 채우지못했던
지난해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있다"고 말했다.

부산선원인력관리부에만 4천1백5명(27일 현재)의 선원직 구직대기자가
등록돼있다.

지난해까지만해도 선원이 모자라 출항취소사태가 빈번했다.

3D업종에서조차 일자리찾기가 어려워지자 실직자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 4월 신동춘 건교부 해외건설과장은 깜짝 놀랐다.

4백명의 해외건설근로자 모집공고를 낸 결과 무려 2천8백여명이 지원했기
때문.

젊은 실직자들은 헤드헌터업체의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던 김현수씨(34)도 이런 케이스.

하지만 조건이 잘 맞지 않아 아직도 기다리는 상태다.

헤드헌터업체인 DIB헤트헌터의 경우 올해만 외국업체 구직희망자 4백여명이
등록했다.

실업과 취업, IMF시대의 최대의 과제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못구한 취업재수생, 그리고 직장에서
해고당한 실직자들이 넘친다.

이런 실업대란이 빚어지면서 직업의 귀천이 없어지고 있다.

"새우잡이배라도 좋다.

태워만 다오"라는 유행어는 결코 우연히 나온게 아니다.

< 류성 기자 sta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