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기술 유출사건은 기업비밀에 대한 낮은 보안의식과 관련법의 허술한
보호호체계가 맞물려 일어났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먼저 부정경쟁방지법은 회사임직원이 재직중에 영업비밀을 누설한
행위만을 처벌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기밀누설이 퇴직후 경쟁사에 스카웃되는 과정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현실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 94년 모나미와 마이크로 세라믹간의 산업재산권분쟁에서
영업비밀을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의 기소죄목은 절도와 횡령죄.

영업비밀이 담긴 채 유출된 디스켓이나 노트 등은 회사재산에 해당된다는
피해업체의 주장에 대해 법원은 이유없다며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연구원에 지급한 노트는 지급순간 개인사유물에 해당한다"는 것이
판결취지.

이 사건은 결국 영업비밀을 유출한 퇴직직원에 대한 형사처벌없이
일단락됐다.

낮은 처벌조항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사범에 대한 법정최고형량은 징역 3년.6년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 절도죄보다 턱없이 낮다.

업계는 이번 사건으로 인한 피해규모가 6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나 법정형량이 적어 사전 예방효과가 적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송달룡 변호사는 "처벌규정의 상향조정과 함께 기밀누설에 관여한(협조한)
제3자에 대한 처벌조항이 신설돼야한다"고 밝혔다.

누출된 영업비밀이 부메랑 으로 돌아오지 않게 강력히 제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또한 국내법은 관대할뿐이다.

부정경쟁방지법은 부정경쟁행위를 조성한 물건의 폐기, 설비제거 등 기타
필요한 조치를 청구할 수 있다(4조)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애매모호하다는 것.

이번 사건의 경우 대만업체가 제조한 물품의 국내반입 금지나 반입물품의
폐기 등을 명할 수 있는지 여부조차 국내법으로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국내업체의 낮은 보안의식도 문제다.

국내기업의 경우 취업규칙에 직무와 관련된 영업비밀을 유출시켜서는
안된다는 조항마저 없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보호기간도 "퇴사후 몇 년 동안"으로 못박지 않고 있다.

이에따라 소송으로 번질 경우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결국 기업정보는 관련 임직원에 대한 적절한
보상체계가 마련될 때만 효과적으로 보호될 수 있다"며 "이번 사건도
기밀보호에 대한 대가를 불필요한 비용으로 인식하는 경영층의 근시안적인
사고가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 이심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