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의 신화를 뒤로 한 가혹한 시련".

한국경제가 위기를 맞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조개혁프로그램이 고실업 저성장 고인플레 초긴축
재정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94년 금융위기를 겪었던 "멕시코의 경험"을 배우기
위해 서강대 국제대학원 김종섭 교수를 만났다.

김교수는 미 시카고대학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받은 후 91년부터 6년간
멕시코 최고의 사립명문인 이탐대학교수로 재직했다.

이 기간중 멕시코정부의 재무부 동자부 자문관으로 활동, 민영화추진과정에
깊숙히 관여했다.

김교수는 본지 박영배 편집국부장과의 인터뷰에서 "계획대로 개혁과 규제
완화를 추진할 경우 수출기반이 튼튼한 한국경제는 1년정도 지나면 위기상황
을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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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박영배 편집국 부장 ]

<> 박부장 =한국과 멕시코, 두나라가 금융위기를 맞은 이유가 유사하지
않습니까.

<> 김교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은 같은 원인입니다.

자국통화의 고평가, 그런 상황에서 경상적자의 누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멕시코의 경우 93년부터 미국쪽의 이자율상승에 따라 외국자본이 과거처럼
충분히 들어오지 않자 외환보유고를 풀고 달러표시채권을 발행했습니다.

94년 한해동안의 국채발행이 2백억달러에 달했습니다.

그해 3월부터는 국제시장에서 평가절하압력이 있었는데 이를 멕시코정부가
거의 무시하다시피했지요.

결국 상환부채가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외국자본은 일거에 빠져나갔고
신용이 추락, 외자조달이 어렵게 된 것입니다.

<> 박부장 =한국도 구제금융을 받게 된 마당에 과연 IMF는 멕시코에 대해
어떤 요구를 했고 또 멕시코의 구조개혁과정은 어떠했는지 궁금한데요.

<> 김교수 =IMF의 구조개혁프로그램은 나라마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큰 테두리에서 성장률 재정지출같은 거시경제지표를 안정.긴축적으로
운용하라는 요구가 기본이고, 여기에 각국사정에 따라 약간을 차이를 둡니다.

멕시코에 대해서는 민영화요구가 강했습니다.

82년의 금융위기이후 많은 기업을 민영화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하던 개혁을 더욱 가속시키라는 요구인 셈이지요.

멕시코는 차근차근 해나갔습니다.

크게 본다면 에너지 통신 교통의 세가지 부분으로 나눠 진행됐고 현재는
거의 마무리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 박부장 =민영화라는 게 결국은 많은 부문에서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는
작업일텐데,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으로 진행됐습니까.

<> 김교수 =국영기업들은 어느나라나 덩치가 크지요.

워낙 덩치가 크다보니 어느 한 부처에서 처리할 사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민영화위원회를 만든 겁니다.

위원에는 5개부처장관이 임명되는데 재무 상공 노동 그리고 감사원장이
참여하고 사안별로 동자부나 교통부장관이 들어가는 식입니다.

또 차관들이 실무적인 현안을 많이 논의했고, 세부적인 실무작업을 위해
재무부안에 민영화실이란 것을 두었습니다.

자신들의 권한이 축소되는 동자부나 교통부는 부처이기주의적인 면모가
없지 않았지만 각 부처에서 젊고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테크노크라트(기술
관료)들이 대거 참여, 효율적으로 일을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교수는 민영화실에서도 근무했다)

<> 박부장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감사원이 들어갔다는 사실이 흥미롭군요.

아무튼 민영화의 지속적 추진이 IMF의 요구이고 보면 이에 대한 저항도
아주 심했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데요.

<> 김교수 =그렇습니다.

특히 석유부문은 양보를 못하겠다고 버텨 주식시장에서 49%의 지분을
매각하는 것으로 타결지었습니다.

석유산업이 40년대 외국인으로부터 몰수한 것이기 때문에 국부란 인식이
워낙 강했던 것이지요.

항만 철도 등에서도 저항은 있었지만 결국은 계획대로 진행됐고 현재는
생산성향상 가격인하같은 효과가 나타나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박부장 =한국의 경우 금융개혁을 강력히 많이 요구하고 있는데,

멕시코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지요.

<> 김교수 =IMF지원금이 들어올 때만해도 금융개혁은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습니다.

금융기관에 대해 정부가 지원하고 부실채권의 처리를 도와주되 인플레를
유발시키지 않고 재정부담이 심하지 않은 범위내에 그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끝나지는 못했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회복에 가장 큰 걸림돌이 금융이란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부실채권이 해결되지 않고는 경제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었습니다.

10여개 프로그램을 통해 상당한 액수를 금융부문에 쏟아부었지요.

멕시코정부는 특히 고금리에 따른 부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묘안을
짜냈습니다.

이자율을 인위적으로 낮추면 금융기관들이 어렵고 높은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니 기업들이 무너지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일정수준을 넘는 이자부분에 대해서 보조를 한 것입니다.

물론 외국은행들과의 통폐합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 박부장 =한국금융기관들의 경우 정부지시에 따른 관치금융, 일부
대기업에 대한 사업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대출 등으로 망가지지
않았습니까.

멕시코에서도 그런 허술한 자금관리가 있었던 모양이지요.

<> 김교수 =멕시코는 사실 기업과 은행이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82년 금융위기때 은행들은 모두 국유화됐었습니다.

80년대후반부터 경제에 자신감이 생겨나 민영화가 추진됐는데 결국 은행을
매입할 수 있는 자본가는 기업밖에 없었습니다.

기업들이 대주주이고 보면 이들에 대한 어느정도의 무담보대출같은 것이
횡행하지 않았겠습니까.

결국 특정기업에 대한 편중된 부실대출이 금융기관부실의 원인이 됐습니다.

<> 박부장 =당시 사회분위기는 어떻던가요.

우리나라같이 외화절약, 경제살리기 캠페인 등 떠들썩했습니까.

<> 김교수 =사실 외화절약도 중요하지만 책임소지를 분명히 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하는 것아닙니까.

멕시코에서는 우선 어느정부의 책임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직전대통령이었던 살리나스는 금융위기가 "12월의 실수"(December Error)
라는 표현을 써가며 자신의 재임시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세디요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경제를 망가뜨렸다고 공격했습니다.

세디요는 물론 "어떻게 금융위기가 한달만에 갑자기 터질 수 있느냐"고
반박했지요.

결국은 살리나스의 실수가 컸다는 식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이후 군부의 쿠테타설이나 장관교체설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이같은
분위기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개혁이 진행된 것같습니다.

<> 박부장 =이제 멕시코경제가 완전히 회복기에 들어선 것으로 보이는데
김교수 견해로 꼭 한국경제가 배워야 할 점이라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 김교수 =한번 금융위기가 닥치면 엄청난 댓가를 치룹니다.

82년도 위기이후 멕시코는 10년동안 0%의 경제성장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이 기간을 잃어버린 10년(Lost decade)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당시 위기에 대한 대응책이 국유화 등 규제를 강화하는 쪽이었고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지요.

한국정부가 원래 예상했던 개방계획이나 규제완화를 이번 기회에 가속화
시켜야 합니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멕시코의 경우 많은 전문가집단의 자문을 얻었습니다.

꼭 금융개혁이 아니고 다른 많은 분야에서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의견을
물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