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의외의 "경제사건"이 벌어졌다.

사회통념상 잘 나가는 직업군의 하나로 꼽히는 현직 치과의사가 소비자
파산신청을 낸 것.

치과의사 김모씨는 의원개업비에 쓴 1억2천만원 등 3억여원의 빚을 갚을
수 없다며 제주지방법원에 소비자파산신청을 내 의료계는 물론 법조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소비자파산신청은 법원으로부터 채권 채무를 동결받되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받는 것으로 올들어 서울에서만 5건이나 이뤄져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소비자파산시대---.

국가부도라는 국제통화기금(IMF) 신탁통치시대를 맞아 빚더미에 오른
개인이 더이상 이를 감당치 못하고 "사망진단서"를 신청하는 소비자파산
시대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이는 주가붕락으로 인한 깡통계좌의 속출, 카드 연체이자의 증가, 빚보증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경제상황을 반영, 영역을 넓히고 있다.

특히 IMF가 요구한 긴축정책은 대규모 실업사태를 예고해 소비자파산에
따른 가정경제의 동반 붕락이 우려되고 있다.

소비자파산시대의 예고편은 증권사 객장에서 숨김없이 나타난다.

파란색으로 점철된 시세판 뒤엔 큰 손해를 안기고 줄행랑을 친 직원들을
찾아내라는 투자자와 증권사직원들간의 고성이 연일 오간다.

이는 파산의 전주곡에 다름아니다.

증권감독원에 따르면 9월말 현재 1백24개에 불과하던 깡통계좌가 11월말
에는 1백여배인 1만4천여개로 늘어났다.

부족금액도 25억1천여만원에서 2천9억여원으로 증가했다.

담보부족계좌수도 5천6백여개에서 4만1천8백여개로 급증했다.

이들 계좌의 주인들중에는 전재산을 날려 사실상 "파산상태"에 빠진
사람도 상당수 있을 것이라는 게 증권감독원 관계자의 설명.

플라스틱 머니라는 신용카드에 발목을 잘힌 예비파산자도 많다.

카드대금이나 대출금을 제때 상환하지 못한 신용불량자수가 수백만명에
달하는게 이를 웅변한다.

한국신용평가 조사 결과 카드대금 연체나 사기매출 건수는 1백67만여건,
대출금 미상환 등을 포함한 전체 신용불량거래건수는 3백90만여건으로 나타
났다.

신용불량건수는 불량자수의 두배정도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전체 신용불량자는 1백95만여명 정도인 것으로 추측된다.

2백여만명이 빚독촉에 시달리며 파산명단에 오를 날을 기다라고 있는
셈이다.

기아 진로 등 대기업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대기업사원들도 생활고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

부도기업의 사원들은 상여금이나 수당은 물론 월급도 제때 받지 못하는데다
빚보증을 섰다가 "유탄"을 맞고 그대로 절명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개인의 부도 위기는 선량한 시민들의 마음을 황량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달 3일 주가폭락으로 5천만원을 날린 50대 가장이 자살한 것을 비롯
나이트클럽에서 쓴 카드대금 3천여만원을 갚기위해 여중생을 납치한 20대가
검거되기도 했다.

법조계에서는 불황으로 파탄에 빠진 소비자들이 자살.절도 등 범죄행위
대신 합법적으로 채무를 면제받을 수 있는 소비자파산제도를 이용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알뜰한 살림을 꾸려 빚얻을 일은 아예 하지 않는게
현명할 것 같다.

<김인식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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