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사실상 IMF신탁통치체제로 전락하자 국민들 사이에 막연한
불안감이 확대재생산되면서 심리적 공황현상까지 초래되고 있다.

구조조정에 따른 감원과 세금부담 가중우려, 물가불안, 정부의 관리능력에
대한 불신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일반 회사원과 자영업자, 주부, 학생
등에게까지 이러한 불안심리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일종의 IMF신탁통치 신드롬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24일 증권시장에서는 한국경제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강해지면서 주식을
일단 팔고보자는 투매심리가 일어 주가가 폭락했다.

D증권 강남지점 김모대리는 "한치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누가
주식을 사려고 하겠느냐"며 "더 늦기 전에 손을 떼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이러한 투매를 부추기는 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일반회사원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H기업 영업관리팀의 박모차장은 "정리해고에 대한 불안감때문에 회사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더구나 내년부터는 회사가 부도나더라도 퇴직금
전액을 되돌려 받을 수 없기때문에 마냥 버티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미리
사표를 쓸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특히 대폭적인 인원감축의 회오리가 몰아칠 것으로 예상되는 부실금융기관
의 경우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일부임직원들이 자신이 정리대상에 포함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으며
이중에는 미리 이직자리를 알아보는 등 업무공백상태까지 초래하고 있다.

개인사업자들의 경우 일찌감치 사업을 정리하고 사무실 임대업 등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 나타내고 있다.

서울 송파구에서 건설업을 하고 있는 김모씨는 "경기전망이 불투명해
당분간 사업에서 손을 떼고 임대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특히 유학생을 둔 학부모들은 아예 보따리를 싸고 이민을 떠나는 방안까지
고민하는 등 불안정한 사회심리가 그대로 세태에 반영되고 있다.

삼일회계법인의 김정현 회계사는 "정부가 어떠한 방안을 내놓더라도
국민들이 이를 받아들일지가 의문일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라며 "국민들이
국가의 앞날을 예측할 수 있도록 정부정책의 투명성을 높히는 길만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 이심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