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 법원은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로 구성된 국가 핵심기관이다.

그만큼 판사와 검사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크다.

그러나 최근 영장실질심사 범위에 관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둘러싼 검찰과
법원의 싸움은 대다수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고 있다.

법의 핵심인 "인권보호"를 논하기 보다는 이를 빙자해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준 탓이다.

지난 2주간 이들 두기관이 보여준 행태는 대선을 앞둔 구정물 투성이의
정치판 싸움과 크게 다를바 없다.

판사들은 형소법 개정에 반대한다며 "집단행동"을 서슴지 않았고 검찰은
판사들이 인권보호를 내세워 자기 몫 지키기에 급급하다고 비난했다.

심지어 검찰고위관계자는 "판사들은 무식하고 무책임한 집단"이라고 깎아
내리고 "법원이 이 제도를 외국에서 도입하면서 영어 해석을 잘못하는
바람에 현행처럼 됐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이에대해 일부판사들은 "검찰이 슬롯머신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전직
검사에게 형소법 개정을 맡긴 것은 검찰 스스로의 얼굴에 먹칠 하는 것"
이라고 정면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인권보호의 핵심인 영장실질심사제를 놓고 두 기관이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데 대해 비난여론이 들끓자 흠집내기는 일단 진정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수면아래서는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고 있다.

17일 문제의 법 개정안이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되자 윤관 대법원장과
김태정 검찰총장이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로비전을 펼치고 있다는
설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

국민들은 지금 그렇지않아도 지저분한 정치판과 침체의 수렁에서 헤매는
경제로 인해 풀죽어 있는 형편이다.

국가존립의 기본 틀이자 정의와 양심의 "표상"인 이 두 기관은 일반
서민들을 안중에나 두고 있는지.

김문권 < 사회1부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