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11시 대검찰청 8층 회의실.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비자금의혹에 대한 수사를 대선이후로 유보키로
했다는 검찰의 입장이 전격 발표됐다.

이날 발표를 맡은 김태정 검찰총장의 얼굴엔 비장함이 감돌았다.

발표문을 작성하느라 밤잠을 못잤는지 약간 피곤한 표정이었지만 준비된
원고를 읽어가는 눈빛에는 단호함이 엿보였다.

발표후 이어진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김총장은 "독자적인 판단"임을
거듭 강조했다.

청와대나 신한국당과의 사전협의가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수사착수와 관련 양쪽으로 국론이 분열되는 양상을 빚고 있어
누군가 결론을 내야할 것 같아 이같은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시간을 끄는 건 비겁한 짓이라고도 했다.

또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검찰수사가 경제회생의 짐이
되서는 안될 것이란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이날 "총장의 결심"을 TV생중계로 접한 검찰내부에선 큰 짐을 덜게 됐다는
안도의 분위기가 역력했다.

한보수사도중 중수부장 교체라는 검찰사상 초유의 위기상황을 겪은지 채
4달이 안돼 또다시 정치권의 뒤치닥거리나 하지않을까 하는 초초함에서
벗어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검찰고위관계자들이 그동안 "이번 사안에 검찰조직의 사활이 달려있다"고
누차 강조해온 점을 되새겨볼 때 총장의 결단이 어떤 무게를 가졌는지를
짐작케 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수사유보방침이 검찰중립성의 시금석이 될 것인지 아니면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 대한 판단을 미룸으로써 직무유기라는 비난을 받게 될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는 검찰"이라는 김총장의 검찰상은 대선이후
정국 풍향에 따라 그 색깔을 달리할 소지가 크기때문이다.

이심기 <사회1부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