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생필품을 찾아 서울 동대문일대와 부산지역 재래시장을 누비던
러시아 및 폴란드인과 사할린교포 등 외국인 보따리 무역상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한국상품의 가격경쟁력 약화를 반영하는 또하나의 현상으로 외국인 보따리
무역상들의 이탈은 가뜩이나 침체된 시장경기를 더욱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17일 동대문시장에 따르면 의류 신발 핸드백 등 생필품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던 러시아 폴란드 등의 외국인과 사할린교포 무역상들이 우리보다
값이 싼 중국이나 터키 파키스탄 등지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외국인 보따리장사들의 이탈에 따라 이들을 상대로 무역을 하는 동대문
일대 오퍼상들의 숫자도 2~3년전의 6백여개에서 지금은 4백개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나마도 형편이 어려워 연말까지는 50개 이상이 더 문을 닫을 것 같다고
동대문시장 관계자들은 말한다.

동대문시장내 가죽의류 무역업체인 대호무역의 이명선사장은 "몇년전만해도
보따리 상인들이 밀려들어 물량확보에 애를 먹었으나 올들어서는 재고처리가
최대 과제가 됐다"며 "가죽제품을 취급하는 오퍼상은 이미 절반이상이
간판을 내렸다"고 밝혔다.

"외국인 보따리특수"를 누리던 재래시장주변의 숙박업소에도 찬바람이
불고있다.

대하호텔 이스턴호텔 등 외국인 보따리 상인들로 넘쳐났던 동대문일대
호텔의 경우 객실의 절반가량이 비어있는 상태이다.

러시아 보따리 상인들이 특히 많이 찾는 부산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부산시와 무역협회 부산지부에 따르면 보따리무역상이 주류를 이루는
러시아관광객수가 지난 5월 1만3천명에서 8월에는 7천3백명선으로 급감했다.

러시아인들의 환전규모도 크게 줄어 부산 외국인센터내 부산은행의 경우
지난 7월까지만해도 하루 5천달러에 달했으나 8월에는 2천달러로 감소했으며
10월들어서는 1천5백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따리 특수의 위축은 러시아가 수입식품의 라벨표시를 의무화하는 등
수입장벽을 높힌데도 원인이 있지만 그보다는 한국상품이 가격경쟁력에서
중국 등에 밀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러 피혁의류연합회의 전성식 부회장은 "중국상품은 값이 우리상품보다
훨씬 싼데다 국내기업들의 중국현지공장 건설과 중국의 기술수준 향상으로
품질도 국산 못지 않게 좋아져 보따리 무역상들의 이탈은 더욱 가속될 전망"
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또 인접한 지리적인 여건을 최대한 활용하는 한편 러시아 현지에
중국상가타운을 조성하는 등 관민합동으로 러시아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부회장은 "연간 3억달러를 웃돌던 보따리 특수를 되살리기위해서는
보따리 무역상을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러시아 등지에 상점을
진출시키는 등 보다 적극적인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 손성태.김태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