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자본으로 안전한 창업을"

경기불황 틈속에서 음식점창업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명예퇴직자나 조기퇴직자들에다가 부업에 나서는 주부들까지 몰린
까닭이다.

대기업체에서 과장까지 지낸 김현식씨(42.관악구 신림동).

그는 지난 7월 다니던 회사를 떠나 지금은 조그만 식당을 차렸다.

날로 심해지는 고용불안을 못이겨서다.

지난해 명예퇴직한 조동우씨(48.서대문구 창천동)도 비슷한 케이스.

1년동안 실직에 따른 실의속에 보내다 얼마전 집부근에 음식점을 냈다.

하는일 없이 빈둥거리다가는 그나마 받은 퇴직금까지 다 날릴 것 같은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이다.

부업으로 시작한 경우도 많다.

주부 문연주씨(40.구로구 독산동)는 직장에 다니는 남편과 함께 지난달
국수체인점을 열었다.

언뜻보면 경기불황으로 문을 닫는 업소들이 많지만 음식점만은 그렇지
않다.

물론 장사가 안돼 폐업하는 곳도 많지만 새로 간판을 다는 업소가 훨씬
많은 것이다.

별다른 경영노하우(know-how)가 없어도 쉽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물론 "물장사 밥장사는 안돼도 본전은 건진다"라는 장사꾼간 속설도
한몫했다.

그래서인지 요즘 거리에는 음식점간판이 나날이 늘고 있다.

따라서 음식점 간판수를 세어보면 경기불황의 정도를 알 수 있다는 "간판
경제론"이 등장할 정도.

거리의 음식점 간판수는 불황의 깊이와 정비례한다는 얘기다.

직장에서 떨어져나온 사람들이 음식점 창업에 몰린 탓에 나온 우스개라고나
할까.

실제로 한국음식업중앙회의 회원수는 지난 7월말 현재 39만4천9백3개
업소로 지난해말의 37만7천8백94개 보다 1만6천여개가 늘었다.

이 협회 오석현 대리는 "경기불황이라지만 기존 음식점을 인수하거나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 맞물리면서 꾸준히 음식점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연간 시장규모도 지난해 23조원에서 올해는
25조원을 바라보고 있을 정도다.

음식점 창업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적은 종자돈.

3백만원으로 창업해 10억원을 벌었다고 해 세간의 화제가 된 김찬경 미래
유통정보연구소 소장은 "창업초보자들이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명퇴자나 주부들로부터 음식점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한다.

인생 재출발을 위한 시발역으로 음식점 경영에 손대는 퇴직자들이 많다.

하지만 "무슨일이든 시작은 눈물을 동반하는 법".

이같은 신장개업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수요증가보다 공급이 갑자기 늘어나니 음식점간의 과당경쟁이 심하다.

차별화된 서비스 제공으로 성공한 케이스도 있지만 대부분 그 단계까지
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식당을 찾는 고객들도 주머니사정이 넉넉치 않다.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기업체 사원이나 공무원들이 현저히 느는 상황도
꿈에 부풀어 음식점을 연 창업자 가슴을 태우고 있다.

문민불황속에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음식점들.

음식맛이야 식당마다 다르지만 이들은 "불황이 가져온 선물"이라는 공통점
을 갖고 있다.

<김준현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