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철도의 사업비와 사업기간이 재조정된 것은 사전 준비가 충분치
못한 상태에서 착공했기 때문이다.

89년 계획이 확정된후 불과 3년만인 92년 6월 공사에 들어가 착공후 노선및
설계변경이 잇따랐다.

남서울역의 경우 노선이 발표된 90년 6월에는 설치계획이 없었으나 94년
10월 추가 설치가 결정됐다.

대전과 대구역도 지하(90.6)-지상(93.6)-지하(95.5)화로 계획이 오락가락
했고 경주노선과 상리터널도 공사진행중에 변경됐다.

또 차량형식이 선정되기전에 노반실시 설계를 시행했다가 차량선정후
설계를 다시 차량에 맞추는등 시행착오를 겪었다.

당시 노반설계나 건설은 정부나 시공업체 모두 일본 신칸센을 고속철도
차량으로 예정하고 진행했으나 최종적으로는 프랑스 TGV로 결정돼 설계변경
과 일부 구간의 재시공이 불가피했다.

특히 서울의 시발역을 둘러싼 건설교통부와 서울시간, 고속철도 노선에
대한 지자체와 중앙정부간의 잦은 마찰과 협조 미비도 공기 지연및 사업비
증가를 초래했다.

고속철도 건설과정을 되돌아보면 결국 무모하게 사업을 서둘렀고 준비가
덜된 상태에서 착공한것이 사업비 증가와 공기지연을 불러 왔다고 볼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