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이 자신의 부하직원들에게 사무실임대보증금 반환
청구채권을 넘겨준 것이 "재산은닉을 위한 변칙양도"에 해당하는가를 놓고
치열한 법정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싸움은 지난달 한보그룹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이 길모씨 등을 상대로
양수채권양도금지 가처분신청을 서울지법에 내면서부터 시작됐다.

정총회장이 지난 4월 길씨 등에게 양도한 한보건설 사무실(서울 강남구
대치동) 297평의 보증금 11억8천여만원의 반환청구채권을 일체 처분하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요청이다.

제일은행측은 길씨 등이 한보철강판매 한보건설 등에서 부장 및 부장직무
대리를 해온 인물들로 정총회장의 심복이라는 점을 중시, "정총회장이
보증금채권을 이들에게 넘긴 이유는 채권은행이나 국세청의 추징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임대차계약서에 보증금채권을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채권양도 자체가 무효라고 강조하고 있다.

건물주인인 정호준씨(해암레포츠프라자 대표)도 재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길씨 등에게 아직까지 보증금을 내주지 않고 있는 정씨는 우편물을 보내
"금융권으로부터 4조2천억여원을 대출받았던 정총회장이 "머슴"부하직원에게
서 11억여원을 빌렸다는 말을 믿을 수 없다"며 "나는 나름대로 선량한 시민
이자 기업인으로서 정총회장의 재산은닉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는 보증금을
내줄 수 없다"고 밝혔다.

길씨 등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정총회장이 우리에게 보증금채권을 넘긴 것은 순수한 의도"라며
"재산도피 운운은 근거없는 억측"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보부도사태 이후 정총회장의 재산은닉가능성과 관련한 첫소송인 이번
소송은 지난주 공판이 모두 끝나 조만간 재판부의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길씨 등은 건물주 정씨를 상대로 양수채권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낸
상태이며 제일은행은 길씨 등을 상대로 앞으로 채권양도무효소송, 정총회장을
상대로 대여금청구소송을 낼 방침이어서 양측의 싸움은 점점 격화될
조짐이다.

<김인식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