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결제원에 근무하는 노희섭씨는 요즘 주위사람들이 쓰던 아기용품을
부지런히 물려받고 있다.

대학선배로부터는 중고 아기카시트를 받았다.

새것으로 살려면 10만원은 족히 주어야 한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로부터는 헌옷가지를 한보따리 얻어왔다.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혜인주부도 헌옷 바꿔쓰기에 아주
열심이다.

잘 아는 학부모들로부터 초등학교 2년생아들용 청바지나 티셔츠를 얻어
입히는 대신 유치원생이 있는 이웃집에는 자기애가 쓰던 장난감을 준다.

이명숙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는 변호사 이명숙씨의 경우는 소송의뢰인의
자녀들이 입던 옷까지 얻어 입히는 실속파.

최근 이처럼 아이옷이나 장난감 등 헌 아이용품을 주고 받는 주부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이 올들어 처음 생긴 것은 아니다.

형제나 친척들을 중심으로 이런 풍습이 있었다.

그러나 고도경제성장으로 소득수준이 높아진 반면 자녀는 적게 낳는
가정이 늘면서 이런 미풍이 퇴색돼 왔었다.

아이들에게 비싸고 좋은 것을 사주고 싶어하는 풍조가 강해진 탓이다.

다른 사람에게 쓰던 옷가지를 주겠다고 하면 기분나쁘게 여기지 않을까
우려, 버리는 예도 많았다.

하지만 불황이 장기화되고 고용불안이 가중되면서 체면보다는 실속을
중시하는 주부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특히 아파트단지에서 생활하는 주민간에 중고 생활용품을 주고 받는 일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추세를 반영, 장난감대여점이 여기저기서 성업중이다.

극심한 불황이 가져다 준 하나의 바람직한 부산물인 셈이다.

자녀에게 과소비하는 젊은 부부도 있기는 하지만 유치원이후 각종 과외
활동 등에 지출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을 감안, 소비성 지출을 억제하려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일산에 사는 주부 김정희씨는 "지금 옷 등 소비성지출을 줄여 나중에 쓸
교육비적금과 교육보험에 붓는다"고 말한다.

사실 어린이용품의 자격은 너무 비싸다.

어른 것을 뺨칠 정도다.

서울시내 백화점에서 많이 팔리는 아동복이나 장난감 등의 절반이상이
해외라이선스브랜드이거나 직수입제품이다.

일본산 셜리 템플은 화려한 레이스의 여아용 원피스 한 벌이 20만원
가까이 한다.

미국산 베이비게스는 무늬없는 청점퍼와 바지 한 벌이 10만원을 넘는다.

또다른 일본브랜드는 돐장이 아기용 운동화에 미키마우스얼굴을 그려
놓고는 어른운동화보다 비싼 8만원에 팔고 있다.

어린이용품의 지나친 고가화도 아동복이나 장난감의 "리사이클"에 한몫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옷 장난감 주고 받기 바람을 일으킨 것은 뭐니뭐니해도 불황
한파.

의료비나 식품과는 달리 아동복이나 용품 장난감 등은 이른바 "경기
탄력성"이 높은 품목들이기 때문이다.

임금동결 고용불안 등으로 확산된 심리적인 빈곤감이 어린이의류와
장난감의 소비를 우선적으로 위축시키고 있다는 말이다.

경기불황이 초래한 어린이용품의 소비위축은 알뜰소비문화의 재생산이라는
순기능을 낳은 셈이다.

< 김정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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