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김미영씨(서울 성수동 31)는 올초 큰 봉변을 당했다.

차선을 바꾸는 택시와 접촉사고가 났다.

택시가 너무 갑자기 끼어들어 미처 피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다.

택시의 운전석쪽 앞부분이 찌그러지는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김씨를 놀라게 한 것은 그 다음부터.

차에서 뛰어내린 택시운전사는 다짜고짜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왜 깜박이를 켜고 들어오는 차에 양보를 하지 않았냐고 호통을 쳐댔다.

눈을 부라리고 마구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김씨는 기가 질렸다.

김씨는 운전대를 잡은지 3개월밖에 안된 초보운전자.처음 당한 사고였다.

사고 처리를 어떻게 해야하는 지는 물론 누구 잘못인지도 가릴줄 몰랐다.

당연히 기세등등한 택시운전사의 "승리"였다.

김씨는 수리비조로 20만원을 주고서야 운전사의 호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국 운전자들에게는 이같은 사고 불문율이 있다.

무조건 네 탓이라고 우기는 것.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나의 잘못을 먼저 인정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운전사에게는 "네 탓이오"가 철칙이다.

운전자끼리 차를 세워놓고 말다툼하는 모습은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길이야 막히건 말건 별 상관이 없다.

시시비비는 상황에 따라 밝혀지는 게 아니다.

누구 목소리가 큰가로 결정된다.

남부끄러운 줄이라고는 도대체 모른다.

상식이 통하질 않는다.

어거지 쓰기는 여기서 그치질 않는다.

사고현장에서 웃으며 헤어졌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

서울 염창동에 사는 임훈구씨(33)은 지난해 씁쓸한 경험을 했다.

퇴근하던 도중 오토바이를 뒤에서 살짝 받는 사고를 냈다.

오토바이는 넘어졌다.

다행히 오토바이 운전사는 별 부상이 없었다.

임씨는 오토바이 운전사에게 연락처를 적어줬다.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는 말도 남겼다.

다음날 오후 회사로 전화가 걸려왔다.

오토바이 운전사는 꼼짝을 할 수 없어 집에 누워있노라고 했다.

임씨는 퇴근 길에 그의 집을 찾아갔다.

그는 병원에 다녀야 하는 데 그때마다 연락하기 서로 번거로우니
1백만원으로 합의하자고 나왔다.

임씨가 정그렇다면 보험으로 처리하겠다고 하자 그러면 70만원만 내라고
흥정을 시작했다.

임씨는 결국 약값으로 30만원을 주고 나왔다.

"순진한 사람인 것 같은데 누가 옆에서 잘하면 한 몫잡을 수 있다고
부축인 것 같아요.

마구 억지를 쓰는데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구요"

임씨는 이런 운전문화가 서글프다고 말했다.

한국의 운전문화는 이처럼 목소리 높이고 어거지쓰는 게 일반화돼 있다.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상대편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봉"이다.

이게 자동차 1천만대 시대의 우리 모습이다.

<조주현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