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윤창모(36)씨는 여름만 되면 악몽에 시달린다.

2년전 피서지에서 생긴 일 때문.그는 당시 강원도 속초로 가족동반 여름
휴가길에 올랐다.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강릉에서 해안도로로 속초를 향했다.

오후 7시 30분쯤.

모처럼의 나들이에 휘파람을 불던 그는 별안간 나타난 "괴물"로 인해
사지를 넘나드는 긴장과 전율에 떨어야 했다.

20t급으로 보이는 대형트럭.휘파람소리에 트럭의 경적이 묻혔었나.

트럭은 연신 전조등을 상하로 비춰대기 시작했다.

순간 윤씨는 아차하는 마음으로 1차선을 비워줬다.

그러나 문제는 그때부터.

"괴물"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

괴물은 길옆 낭떠러지기로 윤씨의 차를 마구 밀어붙였다.

그러길 수차례.5분이나 지났을까.

괴물의 운전자는 창밖으로 손을 흔들며 여유있게 그 자리를 떠났다.

윤씨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는 하도 놀란 나머지 괴물의 번호판도 보이지않을 정도였다.

이승과 저승을 왔다갔다한 순간이었다.

윤씨의 여름은 그렇게 무참히 일그러졌다.

트럭과 버스 등 대형차의 난폭 운전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난폭운전이 교통문화 전반을 왜곡시키는 주범이란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대표적인 왜곡 사례가 차선독점.

"네차선도 내차선, 내차선도 내차선"식이랄까.

대형차는 몸집이 크기 때문에 소형차 운전자의 시선을 가릴 뿐만아니라
이동축이 커 그 자체로 도로에선 골칫덩이다.

그런데 급하게 진로를 바꾸거나 제동을 걸면서,또는 끼여들기로 위험
잠재요인을 한꺼번에 토해낸다.

조금만 늦게 달리면 번쩍거리면서 경적을 마구 울려 대며 달려오는
큰차들의 폭력앞에 주눅들대로 주눅든 자가운전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먹이를 쫓듯하는 대형차들을 피하기위해 더 빨리 페달을 밟아야하는게
우리의 현실이기도하다.

추월선이 없는 영동고속도로등에서는 앞길을 가로막는 큰차들은 깜박이
신호를 해주지않고 자기 길만을 간다.

참다못해 추월을 시도하다가 마주오는 차들과 충돌, 대형사고를 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1천만대 시대에 다시금 생각해 보는 한국인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 남궁덕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