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에 건전한 노사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새노동법시행이후 불합리한 노사관행이 사라지고 참여와 협력을 바탕으로한
생산적 노사관계가 정착되고 있는 것이다.

단위사업장마다 노사협상이 한창 진행중이지만 과거 노동운동의 상징이던
과격구호와 빨간 머리띠는 찾아볼수 없다.

노사는 머리를 맞대고 회사발전방안을 찾는데 힘을 쏟고 있다.

새노동관계법 시행 1백일을 맞아 급변하는 산업현장의 새모습을 시리즈로
엮는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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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군에 있는 한라중공업 삼호조선소.매년 임.단협때만 되면 노사간
갈등으로 홍역을 치렀던 곳이다.

지난해말 노동법개정파동때는 노조파업으로 조업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올들어서는 대립과 갈등관계가 말끔하게 사라졌다.

그대신 참여와 협력을 바탕으로한 새로운 노사문화가 싹트고 있다.

지난달에는 노조가 무분규를 선언, 노사갈등에 종지부를 찍었다.

화합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삼호조선소는 활기가 넘친다.

도크에는 건조중인 선박들로 가득하고 해안선에는 건조가 끝난 선박들이
두줄로 정박해 있다.

상반기 생산목표는 일찌감치 초과달성했으며 지난 21일 열린 경영회의에서
하반기 목표를 늘려 잡았을 정도다.

선박건조현장에서 만난 한 근로자는 "지금 우리 관심은 회사발전뿐이다.
회사가 성장하지 않고서는 더 많은 "과실"을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노사문화가 건전하게 정착돼 가는 산업현장은 삼호조선소 외에도 많다.

과격투쟁을 벌이며 국내노동운동을 주도해 오던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대우조선등 대형사업장들도 이미 2~3년전부터 변화의 물결을 탔으며 최근
들어 한층 안정적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들 사업장은 현재 임.단협이 한창 진행중이지만 산업현장 전반에 불고
있는 협력분위기에 비춰볼 때 노사갈등은 빚어지지 않을 것으로 노사
관계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이같은 흐름속에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노사화합결의 움직임은 변화된
산업현장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 준다.

지난 95년부터 불기 시작한 산업평화의 바람은 올해에도 이어져 29일 현재
2백59개업체 27만2천여명의 근로자가 노사화합을 다짐했다.

또한 지난해까지 극심한 노사분규에 시달렸던 쌍용자동차 (주)에이피 등
이른바 강성사업장을 포함, 4백61개 사업장에서 임금동결을 선언했으며
기아자동차를 비롯 1백87개업체가 올 임금협상을 무교섭으로 타결했다.

아시아자동차 노조도 이번주초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임금결정권을
회사에 위임키로 했다.

새로운 노사문화는 근로자들의 의식전환이 주도하고 있다.

대립과 반목이 회사발전에 더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한
근로자들은 이제 과격 노동운동에 등을 돌리고 있다.

울산 현대중공업 패널조립부에 근무하는 김모씨는 "근로자들 사이에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면 굳이 투쟁을 위한 투쟁을 벌일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고 밝혔다.

실익없는 투쟁에는 동참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이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노사분규 건수가 당초 우려와는 달리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29일 현재 노사분규발생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건이 줄어든 28건을
기록했으며 쟁의조정 신청건수는 지난해(4백37건)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2백10건에 불과하다.

더욱이 올해는 대형사업장에서의 악성분규가 눈에 띄게 줄어들어 분규
참가자수는 지난해(3만8천1백83명)의 3분의 1 수준에도 못미치는
1만2천5백54명으로 집계됐다.

근로손실일수도 5만9천8백16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1만7천2백4일의 5분의
1로 급감했다.

특히 근로자들의 의식변화는 노조의 투쟁전략을 바꾸어 놓아 올해 발생한
노사분규 가운데 생산시설 점거와 같은 불법쟁의행위는 아직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노동운동의 이같은 변화에 대해 울산지방노동사무소 이기권소장은 근로자들
의 의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소장은 "대다수 근로자들은 예전과 같은 무분별한 노동운동으로는 한계에
달한 회사 경쟁력을 회복시킬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며 "새로운
노사문화가 산업현장에 정착되고 있는 것은 이같은 의식변화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 김광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