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규명 후시공"

경부고속철도 안전진단 결과를 접한 대다수 시민들은 한결같이 철저한
원인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들의 혈세인 2조원 가량의 막대한 예산이 투자된 대규모 국책사업의
부실 원인이 밝혀져야 하고 책임자 문책등 후속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가 무너진지 몇년이나 됐습니까. 위기만 모면
하자는 안일한 사고방식과 한건주의로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피해를
당했습니까"

시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경부고속철도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한 해법은 두가지로 요약할수
있다.

부실원인을 밝혀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한뒤 국민들의 합의를 모아 공사를
추진하자는 것이다.

고속철도 건설을 추진하게된 정책입안과 시행과정에서 발생한 정부
관련자들의 관리부실, 고속철도 건설공단의 감독및 설계 감리부실, 건설관련
업체들의 시공부실에 대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미국 안전진단 회사인 WJE사가 이번에 조사한 1천12개소(시험구간의
10%)외 나머지 전구간도 국내 관련 전문가들로부터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건설업계 전문가들은 주장하고 있다.

"책임소재를 분명히 밝혀야죠. 그렇지만 더 중요한것은 대역사인 경부고속
철도의 밑그림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그려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교통개발연구원의 서광석 철도연구실장은 고속철도 건설과정에서 드러난
잘못을 교훈삼아 후손들에게 보다 완벽한 고속철도를 남겨줘야 한다고
말한다.

건교부와 고속철도건설공단도 이같은 주장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정부는 부실시공에 대한 법적 행정적 처리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부실공사에 관련된 공무원이나 건설업체에 대해 법적 행정적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강윤모 수송정책실장은 "부실에 책임이 있는 업체들이 문제가 된 구간의
재시공 비용을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며 건설기술관리법 건설업법등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나면 해당 업체와 기술자는 법 규정에 따라 영업
정지및 업무정지등을 피할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안전진단 결과로 경부고속철도의 공기지연과 투자비용 증가는 불가피
할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공기가 늦어지더라고 안전한 고속철도를 건설하는게 더 중요하다는게
시민들의 목소리다.

민간 연구기관들은 전체 공사비가 당초 공단이 제시한 10조7천4백억원(93년
기준)에서 물가상승률과 재시공 비용등을 포함하면 두배 이상 늘어 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공사기간도 당초 목표인 2001년말보다 최소한 4~5년은 늦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와 같은 극심한 경기침체와 정부의 재정상황을 고려한다면 경부고속
철도공사가 예정대로 추진될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그래서 경부고속철도의 계획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재 공사에 들어간 서울~대전간은 고속철도로 건설하고 나머지 대구~
부산간등은 경부선을 전철화하는 것이 좋지 않으냐는 대안도 제시되고 있다.

고속철도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선 건설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고속철도
건설공단에 대한 대수술도 필요하다.

현재의 고속철도공단 조직과 인력구조로는 최첨단기술력과 추진력이 요구
되는 대형 국책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수 없다.

범정부차원에서 사업을 추진할수 있도록 공단의 조직을 개편하고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또한 고속철도 공단과 관련사업에 대한 철저한 감사도 필요하다.

"일본은 공사시작 4년만에 고속철도를 완공했어요. 우리도 국민적 합의가
확인되면 국력을 결집해 공사를 완공해야 합니다. 고속철도의 완공 여부는
대한민국의 저력을 확인할수 있는 기회가 될겁니다"

한 국책연구원의 L원장은 시시비비를 빨리 가리고 국력을 모아야 할 때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고속철도 건설을 둘러싼 더 이상의 시행착오가 없도록 이번 기회에 매듭을
풀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최인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