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남측지역인 쿠페르티노에 위치한 휴렛팩커드.

제어계측기와 컴퓨터관련부품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겉으로 봐선 일반
회사가 아닌 대학교처럼 아늑하다.

그래서 사원들도 회사를 "캠퍼스"라고 부른다.

회사주변의 잘 가꾼 녹지대와 한가롭게 주변을 산책하는 주민들도 눈길을
끈다.

사무실 내부는 엔지니어들마다 대용량 터미널 앞에서 모든 업무를
자동으로 처리한다.

인천 미디어밸리의 단지조성과 기반시설을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가 하는
힌트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실리콘밸리는 3층이내의 건물을 짓는게 추세다.

가능한한 단층 사무실이 원칙이다.

단지내 빈 공간은 화초를 재배해 환경을 개선하고 공장부지도 건물보다
빈 공간을 중시해 근무여건을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장부지는 소유개념에서 탈피, 대부분 임대로 사용하고 있다.

인천 미디어밸리도 쾌적한 공간활용을 최우선으로 단지를 건설하고 고급
엔지니어들을 위한 주거단지를 조성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관련전문가들은 이와함께 광대역 통신망과 네트워크망을 단지내 기반
시설로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아남반도체기술 조성율 고문은 "미디어밸리도 실리콘밸리
못지 않은 주거 및 근무여건을 조성하고 최신의 통신망을 구축해야 업체
유치가 가능할 것"이라며 "이 부분이 미디어밸리 성공여부를 가름할 것"
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미디어밸리가 정보통신단지로 성공하기 위한 조건으로는 우수한 인력
유치도 중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리콘밸리는 스탠포드 등 유수의 대학에서 배출되는 인재가 바로 산업
현장으로 연결되고 공동연구가 활발한 산학협동체제가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여기에다 제록스, 팔로알토 리서치센터, SRI 등 대학과 기업의 전문
연구소에서 첨단기술을 끊임없이 개발해 상품화하는 순발력이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이 점에서 정보통신부가 설립을 추진중인 정보통신대학원의 송도 유치가
필수적이며 국내의 많은 연구기관과 정보통신산업을 이끌어 가는 젊은 인재
그룹을 발굴하고 영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한 모험기업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는 벤처자금의 원활한 유입도
미디어밸리 조성성공을 위한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경우 매년 미국 전체 벤처자금의 30%가 이곳으로 몰리고
있고 산호제이시에는 지난 한해동안 20억달러의 자금이 투입되기도 했다.

이곳 벤처자금은 창업기본자금 조달을 비롯, 인력고용, 신제품생산 등
전과정에서 활용되며 9개 기업에 대한 투자가 실패해도 한개의 기업에서
성공을 거둘 경우 부가가치가 워낙 높아 벤처자금이 끊임없이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밸리 입주업체에 대한 육성 프로그램의 마련도 필요하다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인천시와 대학, 연구기관들이 주체가 된 입주업체에 대한 부지선정과정의
컨설팅, 사무비품과 운영자금지원, 행정절차의 간소화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리콘밸리주변 산호제이시와 마운틴뷰, 산타클래러 등 각 도시들은
최단시간의 행정처리와 지원자금 등을 제공하고 있으며 안정적인 고용인력
유지 등 사후서비스에도 만전을 기해 업체들이 자기도시를 떠나지 않도록
진력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엔지니어로 성공한 한국인들의 한결같은 지적은 경직된
우리 교육제도의 문제점이다.

실리콘밸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가 개인의 창의력을
한껏 키워주는 자유로운 교육환경이라는 것이다.

산호제이시소재 테크놀러지컨설팅사의 최주남 고문은 "세계 최고의 상품
개발력을 갖춘 일본이 정보통신산업에서 미국에 뒤지는 이유가 창의력이
뛰어난 인재가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한국도 멀티미디어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경쟁력을 지닐려면 암기위주의 교육시스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디어밸리는 토목공사로 조성되는 것이 아니라 창의력을 갖춘 인재가
통신망과 모험자본, 산학협동 등을 그물짜듯 엮어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 인천=김희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