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베대학 경영학부의 가고노 다다오교수(50).

일본에서는 경영조직 전략분야의 최고전문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일본기업의 다각화전략" "경영조직의 환경적응" "경영전략론" "일본
기업의 시스템" "조직인식론" "일본기업의 경영원리"...

기업경영의 교과서로 통하는 책들을 수없이 냈다.

최근에는 독자적 시각으로 분석 체계화한 기업경영의 패러다임이론으로
유명세를 더해가고 있다.

그는 유명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일본경제신문의 인기연재물인 "경제교실"의 집필진이다.

일본의 경제부 기자들은 기사작성과 관련된 코멘트를 듣기 위해 매일 아침
가고노교수와 통화를 시도한다고 한다.

"경영전략의 대가"로 통하는 그가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한.일조직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2일 서울에 왔다.

기업문화 조직문화분야의 한국 일본학자들과의 교류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를 숙소인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만나봤다.

[ 만난사람 = 김경식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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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경영전략으로서의 패러다임이란 어떤 것인가.

<> 가고노교수 = 많은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의 연쇄반응이 전략을
창출한다.

이 조직적 연쇄반응을 촉진하는 것이 패러다임이다.

패러다임이란 기업내부의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세계관이다.

사물을 보는 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라마다 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경영환경이 다르다.

따라서 패러다임을 만들어내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 가고노교수 = 미국의 자동차업체들은 서로 다른 모델을 생산하고 있다.

따라서 업체별 패러다임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소니의 패러다임이 마쓰시타의 그것과 같을 수가 없다.

샤프의 패러다임 또한 이들 두기업과 판이하게 다르다.

그러나 패러다임을 비슷한 것끼리 묶을 수는 있다.

일본기업들의 패러다임은 미국 기업에 비해서는 서로 닮은 점이 많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변경기업이나 신진기업에서 탄생하기가 쉽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 가고노교수 = 훌륭한 전략은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고전제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되는게 아니다.

새로운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변경기업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기 쉬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변경기업은 업계정보가 부족하고 경영자원도 모자란다.

따라서 이노베이션을 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노베이션을 통해 기존의 질서를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것이다.

-변경기업의 이노베이션 사례로 어떤 것을 꼽을 수 있는가.

<> 가고노교수 = 도요타시스템을 예로 들 수 있다.

자동차산업의 혁신은 미국의 디트로이트가 아니라 일본의 아이치현의
코로모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났다.

지난 52년의 일이었다.

당시 일본자동차의 경쟁력은 미국의 그것과 견줄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도요타는 "필요한 물건을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만든다"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이는 대량생산으로 효율을 추구하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도요타는 기술자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이 시스템을 도입했다.

마침내는 생산관리를 전략으로까지 승화시켰다.

이같은 이노베이션이 도요타를 오늘날 세계적인 자동차메이커로 탄생할
수 있게 했다.

-중추기업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기 어려운 이유는.

<> 가고노교수 = 중추기업은 사업을 성공시키기가 쉽다.

따라서 사업에 대해 정열이나 열의가 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업에 성공하면 정열은 식기 마련이다.

사업에 성공한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사회적인 명예나 지위등 사업이외의 것에 관심을 쏟게 된다.

-고정관념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는데 큰 걸림돌이 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 가고노교수 = 패러다임이 없이는 아웃사이드를 볼 수도, 찾을 수도
없다.

서로 다른 업종은 전체의 패러다임을 창출해낼 수가 없다.

물론 전체 패러다임을 바꿀 수도 없다.

시세이도는 화장품분야에서 "입사"라는 뉴비즈니스를 만들어냈다.

프랑스의 섬유회사인 월드는 기존의 시스템을 변경하지 않고 "오조크"를
탄생시켰다.

이들 회사는 같은 분야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창출해낸 것이다.

이러한 뉴비즈니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게 했다.

대부분의 경우 패러다임의 변화는 기업의 리더십을 바꾸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국과 일본의 경우 경제구조가 대기업그룹 중심으로 돼있다.

새로운 경영전략을 만들어내는데 어떤 구조적인 문제는 없는가.

<> 가고노교수 = 경영환경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느냐의 여부가 관건이다.

한국의 대기업그룹은 그동안 경제환경변화에 적응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가 문제다.

한국의 주류업체들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새로운 경영스타일을 구축해야 한다.

그런다음 분배 생산 기술 등에서 독특한 비지니스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다.

-새로운 기업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 가고노교수 = 한국의 대기업그룹은 아주 창조적이다.

대기업그룹간 경쟁도 치열하다.

기아그룹같은 경우는 경영이 자본으로부터 독립돼 있다.

경영의 전문화도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 기아와 같은 기업들이 더 많이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료주의가 패러다임을 만드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경우 아직까지 관료주의가 강하게 남아있는데...

<> 가고노교수 = 관료제란 원래 조직에서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고안된 것이다.

따라서 변화에 적응할 수 없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관료주의가 없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관료주의를 없애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외부적인 환경의 변화도 변수의 하나이다.

한국이나 일본은 현재 외부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

관료주의를 타파할 수 있는 기회다.

-패러다임의 혁신을 위해 운동론을 제시했다.

TQC ZD JK(자주관리) 등 종전의 운동론적 경영기법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 가고노교수 = 일본 기업들은 사원들의 지혜와 에너지를 결집하기 위한
방안을 고안 활용해 왔다.

대중운동형 전사동원형 운동론이 바로 그것이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패러다임의 혁신을 위해서는 다른 운동론이 필요하다.

이는 사회에서의 개혁을 일컫는다.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핵심세력이 있어야 한다.

-경영의 글로벌화에 대비, 국제적 시야에서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
된다고 지적했다.

환경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란 어떤 것인가.

<> 가고노교수 = 소니가 없이는 일본의 전자산업을 얘기할 수 없다.

혼다를 빼놓고 일본의 자동차산업을 논의할 수 없다.

이들기업은 해외에서 패러다임을 창출해내고 있다.

도요타의 사장은 타이 현지공장장이었다.

소니의 사장 또한 프랑스에서 매니저로 근무했다.

이들은 현지공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실천했다.

이러한 것들이 결국 조직전체를 개혁하게 만든 것이다.

한국기업들도 이제는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

해외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내야 한다.

-한국기업의 경우 어떤 전략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 가고노교수 = 대기업그룹 총수의 2,3세들이 패러다임을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창업자들은 조직을 개혁하는데 여러가지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2,3세들은 기존의 패러다임에 덜 얽매이면서 조직을 끌고 갈 수
있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과장에서 이들이 경계해야 할 것은 미국식 경영의
도입이다.

컨설팅회사들이 대량해고 등 급격한 조직혁신을 제안하고 있다.

눈에 띄는 실적을 올리고 싶기 때문이다.

총수들은 급진 개혁을 자제해야 한다.

현재의 어려움을 좀 더 관망하는게 바람직하다.


[ 약력 ]

<> 일본 오사카 출생(47년)
<> 고베대 경영학과 졸업(70년)
<> " 경영학부 조교수(75년)
<> 미 하버드대 경영대 수학(79~80)
<> 고베대 경영학 부교수(88년)
<> " 경영학 박사(89년)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