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에서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신 어머님의 헌신적인 사랑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싶어 이책을 냈습니다"

어머니의 감동적인 헌신덕분에 사형수에서 무기로 감형된후 지난 2월
가석방 출소한 양동수씨(46)가 자신의 인생역정과 어머니의 사랑,
청소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들을 담은 "어머니의 등불을 가슴에 걸고"
(한국경제신문사 발행)란 참회록을 출판, 화제가 되고 있다.

"책을 낸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죽거든 화장을 해 뼈에 꿀을 발라 까막까치의 밥으로
뿌려달라"시며 산천의 날짐승에게 몸보시를 해서라도 자식의 죄를
덜어보려는 어머니의 간절한 모정에 대해 자식으로서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속죄하는 뜻에서 참회록을 썼습니다"

양씨는 출판소감을 이같이 밝히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양씨는 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이 없었다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뻔했던
인물.

평소 술을 못했던 그는 25세였던 지난 75년 성탄절 새벽 1시께 만취
상태에서 누나집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옆집으로 들어가게 됐는데 집을
지키고 있던 여자들이 놀라 소리를 질러 옥신각신하다 14세 소녀 가정부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양씨의 노모 김상순씨 (당시 70세.92년 작고)는
양씨가 대구교도소에 수감되자 교도소 담옆에 한평 남짓한 방을 얻어
"아들의 죄닦음을 한다"며 하루도 거르지않고 인근 절에 나가 3천배의
새벽예불을 올렸다.

또 아침 9시가 되면 교도소로 달려가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난 아들을
보면서 자식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등 옥바라지에 애를 썼다.

이같은 노모의 정성을 알게된 자비사 박삼중 스님(51)의 구명운동에
의해 양씨는 지난 78년 12월17일 박정희 대통령의 대사면조치에따라
무기수로 감형되고 마침내 지난 2월17일 가석방된 것.

어머니의 정성어린 옥바라지에 감복한 양씨는 불교에 귀의, 지난 90년
수감당시 10개월의 통신교교육만으로 법사자격증을 따 사상 처음으로
"무기수법사"가 됐다.

출소후 부산 동구 초량6동 자비사에서 생활하고있는 양씨는 어머니의
유언에따라 노인들을 상대로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매주 일요일 서구 암남동 대청공원에서 1백여명의 노인들에게 참회의
떡과 대추차 막걸리 등을 나눠주는 선행을 베풀고 있는 것.

그는 곧 자비선행회를 설립, 내년부터는 고향인 진주와 부산 동래지역의
경로당에도 정기적으로 방문할 계획이다.

그는 이외에도 지난 3월22일 자비사가 마련한 법회에서 "모정불심"을
주제로 섭법을 시작한 이후 최근에는 부산 경남지역은 물론 대구
충청지역의 사찰과 대학에서 참회하는 마음으로 법회강연을 하고있다.

그는 "앞으로 힘닿는데까지 남을 돕고 희생하는 자세로 법사로서 속죄의
길을 걷겠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26일 동료 사형수 방모씨가 묻혀있는 대구시 달성군 옥포면
기세리 비슬산 기슭 사형수무연고 묘지에서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 부산 = 김태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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