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 민영화바람이 거세다.

경제활성화에 골몰하고 있는 유럽, 자본주의의 길로 들어선 구공산권진영,
공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아시아.

모두가 국영기업에 메스를 대느라 부산하다.

한국에서도 ''효율성을 높이자''며 야심찬 공기업 민영화 계획을 내놨다.

그러나 한국가스공사 담배인삼공사 등 덩치 큰 공기업을 민간에 팔려는
계획은 이내 벽에 부딪쳤다.

재력으로 보자면 이런 매머드급 기업의 구매자는 대기업뿐이다.

중소업체의 살림살이로는 버겁다.

그렇다고 대기업에 넘기자니 자본집중현상이 걱정이다.

국영기업은 처치곤란한 ''문제아''가 된 것이다.

그러나 ''우등생'' 국영기업도 있다.

바로 노르웨이의 최대국영석유업체 스타트오일이다.

스타트오일은 지난 92년이후 지난해까지 4년연속 매출증가를 기록했다.

기술개발 원가절감 효율성제고, 어느모로 보나 세계 석유업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다.

도대체 어떤 비결이 있길래 ''국영기업''이란 악재를 극복했을까.

삼성중공업에 맡긴 선박 건조진행 과정을 점검하러 최근 내한한 해럴드
노르빅 스타트오일 최고경영자(51)를 만나 ''잘 나가는 국영기업'' 얘기를
들어봤다.

[ 만난사람 = 노혜령 국제부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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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중공업과의 프로젝트 내용은.

<>노르빅=다목적 셔틀탱커(MST)라는 최첨단 선박건조 사업이다.

MST는 스타트오일이 세계최초로 개발한 것이다.

삼성은 세계최초의 MST건조업체인 셈이다.

MST는 떠다니는 배 형태로 유전에 정박, 석유를 개발해서 생산한뒤
저장해서 해안으로 운반까지 할 수 있는 선박이다.

1척당 건조비용만도 9억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거대한 플랫폼을 세워 유전 하나 생산하고 나서 부수는 것에
비해서는 훨씬 싸게 먹힌다.

여러 유전을 옮겨다니며 사용할 수도 있다.

현재 삼성의 건조작업은 마무리 단계에 있다.

완성에 앞서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방한했다.

스타트오일은 앞으로도 MST를 2척 더 건조할 계획이다.

이번에 성공적으로 MST가 만들어지면 앞으로 추가사업도 삼성에게
맡기려고 한다.

-한국의 조선산업 수준을 평가한다면.

<>노르빅=스타트오일의 최신 선박중에는 한국산이 많다.

이들 제품을 통해 한국 조선업계의 경쟁력이 많이 높아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세계 각 선박업체들과 경쟁하는데 손색이 없다.

"A학점"을 줄지 여부는 끝까지 지켜봐야겠지만 삼성의 기술력도 대체로
만족스럽다.

특히 납품 기한을 정확히 지킨다는 면을 높이 사고 싶다.

경쟁력의 3대요소를 품질과 가격, 납품기한 준수라고 봤을때
스타트오일에게는 납품기한이 가장 중요하다.

자본흐름상 생산결정에서 완성까지 기한을 가능한 짧게 하는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질적인 측면에서도 한국의 조선기술은 국제수준에 와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임금상승 등 원가부담증가요인이 생겨나고 있다.

아직 고객의 입장에서 가격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

-스타트오일은 국영기업이면서도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노르빅=스타트오일은 정부가 1백% 지분을 소유한 완전 국영기업이다.

그러나 소유와 경영은 완벽하게 분리돼 있다.

정부와는 손을 완전히 끊고 민간기업과 똑같은 원리로 운영된다.

독점도 아니다.

바로 이점이 여느 국영기업과 다른점이다.

민간기업처럼 효율성을 유지할 수 있는 키포인트이기도 하다.

부가가치를 얼마나 창출하느냐, 실제 이익은 얼마나 내느냐에
스타트오일의 경영촛점이 맞춰져 있다.

스타트오일은 철저한 시장경쟁의 원리에 입각해 돌아간다.

따라서 스타트오일이 국영기업으로 남든 민영화되든 회사 직원이나
경영전선에는 거의 영향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스타트오일을 국영으로 하는 이유는 노르웨이의 자본시장
규모가 이 회사를 소화하기에는 너무 작기 때문이다.

노르웨이는 인구 4백만명의 작은 나라다.

따라서 스타트오일이 시장에 공개될 경우 자본시장에너무나 큰 충격을
주게 된다.

즉각 자본시장의 돈을 말려버릴 수도 있다.

-국영기업이라면 속성상 정부의 입김이 조금이라도 작용하게 마련인데.

<>노르빅=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주인 국가가 국영기업의 목표를 뭘로
결정하느냐다.

스타트오일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노르웨이 정부가 스타트오일의
기업목표를 이윤창출로 확실히 정하고 모든 경영결정권을 이사회에 완전
일임한 덕분이다.

스타트오일의 이사회는 연간 10차례 모인다.

여기서 기업경영과발전에 대한 모든게 결정된다.

국회나 정부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스타트오일의 이사회는 법조계나 재계 인사 등 민간분야의 인물로
구성된다.

정부관리는 없다.

금융조달도 국제시장에서 독립적으로 이뤄진다.

이런 구조가 정부의 개입을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스타트오일 관련자들은 만나는 일 조차 극히 드물다.

다른 나라 국영기업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영화하는 의도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국영기업은 경제.정치적 의도가 혼합된 산물이다.

몹시 나쁜 관행이다.

기업을 운영해 나가는 방향이나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책임소재가 분명해야 평가도 가능하다.

나도 해마다 실적을 평가받는다.

시장원리에 기초한 평가다.

정치적 평가가 아니다.

-그래도 경영진 인사권은 국가가 쥐고 있지 않은가.

<>노르빅=아니다.

이사회에 전권이 있다.

CEO임명권도 이사진에 있다.

-하지만 노르빅 회장은 정부관료를 지낸 정치인 출신인데.

<>노르빅=9년전 나를 스타트오일 회장으로 영입한 건 이사회다.

정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노르웨이의 공기업중에서도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기업이다.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비생산적이다.

정부나 기업 모두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기업은 적자가 나면 언제라도 이를 보전할 수 있기 때문에 안이해진다.

-직원들 해고도 가능한가.

<>노르빅=물론이다.

국영기업이지만 공무원이 아니라 민간기업과 똑같은 원칙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에서는 전국단위의 사용자그룹과 노동조합이 정기적으로 만나
임금을 결정한다.

스타트오일도 다른 민간기업과 더불어 이 그룹에 속해 있다.

이것 역시 스타트오일의 성공비결중 아니다.

-노르웨이는 유럽연합(EU)가입을 하지 않았는데, 경제인으로서 이점이
마이너스라고 느끼지 않는가.

<>노르빅=개인적으로는 노르웨이가 EU에 가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정치.사회.문화적 이유에서다.

노르웨이 같은 작은 나라로서는 더 넓은 공동체에 속해야 한다.

노르웨이는 그러나 이기심의 발로에서 EU불가입 결정을 내렸다.

당장 노르웨이 경제가 우위에 있다는 점때문에 EU의 경제혼란에 뒤섞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EU에 가입하지 않고도 풍부한 자원으로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또 EU에서 발을 뺌으로써 EU구성 과정에서 져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나려던
의도도 있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EU에 가입해서 유럽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또 이에 상응하는 책임도 져야 한다.

한국이든, 아시아든, 유럽이든 범죄, 환경, 빈부격차 등 모든 문제를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 풀어야 한다.

나혼자 살겠다는 식보다는 국제협력 과정에 동참해 어렵더라도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게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경제적 측면에서는 EU 비회원국이라는 점이 전혀 장애가
되지않는가.

<>노르빅=노르웨이는 에너지산업 국가다.

유럽의 에너지 정책은 노르웨이와 스타트오일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노르웨이 에너지상품 수출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게 유럽의 에너지
정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럽의 에너지 정책결정과정에참여해 노르웨이에게도 이로운
방향으로 정책을 이끌어가는게 필요하다.

밖에서는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

[[[ 약력 ]]]


<>노르웨이 경제.경영대학원 졸업 <>국립기술연구원 고문
<>노동당 산업.금융담당 위원 <>노르디 전노르웨이 총리 비서
<>석유.에너지부 차관 <>아커 에크 버스크스테트사 부사장
<>아스트룹 훼이어사 사장 <>현재 스타트오일 회장겸 CEO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