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피고인 사형에 추징금 2천2백23억원, 노태우 피고인 무기징역에
추징금 2천8백38억원."

5일 오후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비롯 12.12 및 5.18사건
관련 16명의 피고인들에게 최소 징역 10년이상의 중형이 구형된 순간
피고인들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침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사형이 구형된 전두환피고인은 태연한 모습 가운데서도 허탈한 표정
이었으며 노태우 피고인은 조용히 고개를 떨구었다.

검찰의 이날 구형은 군사쿠데타에 이은 권력찬탈을 통해 집권에 성공,
12년간 국민위에 군림했던 피고인들이 마침내 법의 추상같은 단죄를
맞게된 순간이기도 했다.

만감이 교차되는 듯한 피고인들의 표정에는 오랜 공판과정에서 누적된
피로와 여론의 따가운 시선에 지칠대로 지친친 왜소함만이 드러나 있었다.

<>.오후 3시15분 김상희 서울지검 형사2부장의 추상같은 구형이
이뤄지는 순간 방청석에서는 갑자기 우렁찬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동안 방청석에서 가슴에 한을 품은채 초조하게 재판을 지켜보던
5.18유족과 부상자 가족들이 검찰의 구형과 동시에 환호의 박수를
친 것이다.

평소 법정의 질서를 강조하던 김영일 재판장도 미뤄 방청객의
박수소리를 제지하지 못했다.

검찰논고가 계속되는 동안 연신 안경을 추스리던 전두환 피고인도,
손으로 눈을 비비고 흰손수건으로 땀을 닦던 노태우피고인도 이 순간만은
굳은 얼굴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한차례 휴정을 가진뒤 오후 6시 속개된 공판에서 재판장은
피고인들에게 최후진술 기회를 줬다.

전두환 피고인은 미리 준비해온 원고를 읽어내려갔다.

마치 대통령시절 연설문을 읽듯이 본인이란 용어를 항상 사용하며
재판부와 원고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국민이 원한다면 감옥이든 죽음이든 그 무엇이라도 달게 받겠다"는
문구을 읽을 때는 손을 부르르 떨기도 했다.

전피고인의 5쪽 분량의 최후진술서를 읽고나자 이번에는 방청석 뒤쪽에
앉은 전씨 측근들의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순간 5.18유족들과회원들이 "박수는 무슨 박수냐. 살인마들은 박수받을
자격이 없다" "왜 조용히 안시키느냐"고 고함과 괴성을 지르며 소동을
벌여 진술이 중단되기도했다.

김영일 재판장은 "이곳은 신성한 법정으로 피고인에 대해서 박수도
비난도 할 수 없다"며 양측 모두에게 자제해 줄것을 요구.

<>.노태우 피고인의 최후진술이 끝났을 무렵에는 고이한열씨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전두환 노태우에게 할 말이 있다.

생생하게 걸어가니던 우리 한열이를 왜죽었느냐"고 울부짖다가
법정경위들에 의해 강제 퇴정당하기도 했다.

배씨 등 5.18회원들은 법정밖에서도 "살인마들은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5분동안 격렬히 항의했다.

<>.최후진술에 나선 피고인들은 공판태도와는 사뭇 다르게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는 경어를 써가며 재판부의 선처를 호소해 눈길.

박준병 피고인은 "저는 17세 군대에 들어와 몸도, 키도 군대에서 크고
공부도 군대가 시켜줘서 하는 등 평생 직업군인으로 감사하며 살아왔다"며
"그러나 이런 저에게 군사반란죄라는 죄목이 적용됐다는 사실에 형용할 수
없는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당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하지만 법정에서 자신만만하게 견해를 피력하던 장세동 허삼수 이학봉
피고인 등은 "할 말이 없다"며 최후진술을 거부, 재판 자체에 대한 불만의
표시를 했다.

또 전.노씨을 비롯, 황영시.최세창 피고인 등은 모든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며 다른 피고인들에 대한 처벌을 말아달라고 주문, 끈끈한 의리를
과시하기도 했으며 정호용 피고인은 이례적으로 검찰에게 광주 현지
지휘관을 사법처리에서 제외해준데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 한은구.이심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