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가 한마음으로 협력하지 않았더라면 오덴세조선소의 부흥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덴마크 최대의 조선소 오덴세.

이 조선소의 쿠르트 앤더슨소장(51)은 80년대 후반부터 오덴세가
보여준 비약적인 발전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불과 10년전만 해도 경영난에 휘청거리던 오덴세를 이제
세계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조선소중의 하나로 탈바꿈시킨 장본인이다.

지난 24년 설립된 이 조선소는 지난 50-60년대 북유럽 조선시장의
30%이상을 석권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인건비의 상승에다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한
동아시아의 거센 도전에 밀려 70년대를 고비로 급격한 퇴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급기야 지난 86년에는 2천4백명인 근로자수를 1천명이하로 감원,
중소업체로 전락하는 최악의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나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노사양측은 이같은 상황을 "비상사태"로 간주, 서로 힘을 합쳐
재도약을 모색해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특히 옆에서 일하던 동료들이 하루아침에 실직하는 장면을 본
근로자들의 위기의식은 더욱 강했다.

이런 상황속에서 86년6월 덴마크경영자협회와 덴마크노동조합
총연맹간 역사적인 "노사협력협정"이 체결됐다.

참여와 협력을 모토로 제정된 이 협정은 덴마크 전사업장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고 오덴세조선소에도 노사협력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생산시스템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조선소내에 35명 안팎의 위원들로 구성된 노사협력위원회가 설치되고
각종 노사현안들에 대한 개혁작업들이 추진됐다.

그동안 한국 등 개도국 조선소에 경쟁력을 뺏겨 쇠락의 길을 걷던
오덴세가 부흥의 기치를 내거는 순간이었다.

노사가 공동으로 참여한 노사협력위원회에서는 기업경영정보의
교류, 협력에 필요한 제도의 정비, 미래의 시장전망, 수주전략 등
광범위한 사안들이 논의됐다.

또 현장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문제점이나 고충을 해결하기위해
별도의 노사위원회도 가동됐다.

노사양측가운데 어느쪽이든 회의를 수시로 소집할 수 있는 이
위원회는 노사간 빈번한 접촉과 대화를 가능케하는 전천후 창구였다.

근로자측 2명, 사용자측 2명으로 구성된 공식 임금 및 단체교섭
기구가 있었지만 실질적인 교섭은 노사협력위원회와 노사위원회에서
이뤄졌다.

오덴세조선소에는 또 입사 1년미만의 미숙련공으로 구성된 조직인
패그럴트하우스(Faglert Haus)도 있었다.

패그럴트 하우스는 자칫 전체 노사협의의 흐름에서 소외되기 쉬운
소수 미숙련근로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며 노사협력위원회와 유기적인
협의채널을 유지했다.

그 결과 오덴세의 고질적인 병폐였던 "개인적 고립"과 "분권화"가
사라져갔다.

대신 화합과 일체감이라는 새로운 덕목이 현장에 자리잡았다.

오덴세는 또 91년에 이르러 대외수주와 경영여건의 호조로 인해
다시 근로자수가 2천4백여명으로 늘어나면서 과거 북유럽 조선시장의
패권을 움켜쥘 채비를 갖췄다.

오덴세의 약진에는 노사협력뿐만 아니라 협력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신기술도입 및 생산시스템의 도입도 크게 작용했다.

이는 "에스프리"라는 이름의 유럽의 신기술 공동개발프로그램.

에스프리 프로그램은 유럽내 기업 및 연구기관들이 신기술 연구
개발을 위해 도입한 상호협력시스템으로 한국과 일본이 양분하고
있는 세계조선시장에 본격 도전을 모색하기위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기업체는 EU로부터 연구비의 절반을
보조받고 있다.

당시 오덴세가 참여한 에스프리 프로그램은 자동용접 로봇기술의
개발.

수작업으로 행해지던 용접 및 절단작업을 자동로봇으로 대체,
생산효율을 높이고 산업재해를 줄이는 것이었다.

이 가운데 지난 84-89년에 진행된 중량물 용접프로젝트는 중량물
용접에 CIM(컴퓨터 통합제조)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이 기술은 생산기술에 컴퓨터를 적용해 CAD, 그래픽시뮬레이션,
자동로봇생산 등을 가능케 했다.

오덴세는 이 기술을 통해 세계최초로 독건조작업에 들어가기전에
한 장소에서 철판을 조립, 대블록을 제작하는 개가를 올렸다.

또 세계에서 생산성이 가장 높은 조선소중의 하나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했다.

새로 개발된 자이언트 용접로봇머신도 상당한 도움이 됐다.

이 머신은 모두 12개의 로봇으로 구성돼 있으며 각 로봇은 8개의
이동축을 가지고 동시에 작업을 수행한다.

또 각 로봇은 슈퍼컴퓨팅기술에 의해 조종되며 아주 예민한
센서시스템이 각 로봇의 위치를 확인하고 이동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에따라 로봇작업자는 로봇의 단추만 누르면 되기때문에 산재와는
전혀 상관이 없게됐다.

신기술개발로 톡톡히 "재미"를 본 오덴세는 여세를 몰아 새로운
기술혁신을 시도했다.

"클레오파트라"로 명명된 두번째 에스프리 프로젝트가 개발된 것도
이때이다.

이 기술은 화면을 가진 로봇을 통해 곡면절단과 기하학적인
철판용접을 가능토록 하는 것이다.

이 로봇은 대부분의 산업용로봇이 6개의 축을 가진 것과 달리 모두
11개의 축을 가지고 있다.

오덴세측 관계자는 "노사협력제도의 정착과 신기술개발을 통해
최근 5년동안 생산성이 20%이상 향상됐다"고 밝히고 있다.

한때 쇠락의 길을 걷던 오덴세는 이같은 과정을 통해 점차 과거의
명성을 되찾고 있다.

근로자수도 현재 2천9백명으로 늘어 10년전보다 세배 가까이 늘었고
초대형유조선(VLCC)을 중심으로 한 고부가가치의 선박수주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는 모기업인 AP뮬러머스크 해운회사에 컨테이너선으로는
세계최대규모인 6천TEU급 컨테이너운반선 12척을 수주받아 인도를
마쳤다.

치열한 경제전쟁시대속에서 오덴세처럼 "침몰후 재도약"을 이루는
기업은 흔하지않다.

특히 대표적인 노동집약산업분야에서 동아시아의 거센 도전과 경쟁의
틈바구니속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같은 측면에서 오덴세의 분전 또는 약진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점이 많다.

오덴세가 보여주고 있는 저력의 바탕에는 신기술개발이 주효한
측면도 있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참여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노사협력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자율적인 노사협력의식야말로 위기관리능력을 높이고
경영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첩경이라는 사실을 웅변으로 나타내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