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공부하라고 절간에 보낸 아들이 1년만에 돌아와서는 "영화꾼"이
되겠다는 거야.

못말리겠더라고...

나야 해준게 있남.

그저 힘들어 하는 아들이 안쓰러워 애태운 것밖에는 없다우"

문화체육부가 어버이날을 맞아 선정한 "96 예술가의 장한어머니"중
한사람인 홍성선여사(86, 영화감독 정지영씨의 어머니)는 영화계에서
"비단집 아줌마"로 통한다.

6.25이후 청주에서 15년동안 비단장사를 해 6남매를 서울의 대학에
"유학"보낸 억척어머니.

시아주버니가 일찍 세상을 뜨자 조카 3명까지 떠맡아 훌륭하게 키워낸
"의지의 한국여인"이다.

"서울 부산을 돌며 비단을 구해 조치원까지 열차로 와 다시 버스로
청주까지 오는데 번번이 짐이 많다고 안태워줘.

먼지바람이 휑한 정거장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기다리자면 서러워 눈물이
절로 나고.

그래도 애들이 착실하게 자라줘 괜찮았지"

지문이 없어지도록 일했지만 가난은 좀체 물러가지 않았고 그런데도
필요한 돈을 안주면 학교도 안가는 정감독의 고집때문에 속도 많이
쓰렸다고.

홍씨의 억척스러움은 고려대 불문과에 다니던 정감독과 수학과에 입학한
둘째를 위해 서울로 이사한 후에도 달라질게 없었다.

하숙을 치며 이불장사에 고추 마늘 쌀장사까지 안해본 게 없는 홍씨는
아들이 세계적인 영화감독으로 성공한 지금도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니며
쉴새 없이 소일거리를 찾아 움직인다.

지난 시절 "물가에 내놓은 듯한 아들"의 영화가 개봉될 때마다 남몰래
가슴졸이며 극장을 찾던 팔순노모의 모정은 이제 "우리시대의 시네마천국"을
탄생시킨 한편의 다큐멘터리필름이 되어 세상의 모든 아들들앞에 펼쳐지고
있다.

<고두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