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통신이 사회를 바꾸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마음껏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면서
생활방식과 문화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통신 가입자는 70만여명.

이들은 컴퓨터통신으로 정보를 주고받거나 관심사를 토론하며 새로운
"사이버(가상)사회"를 만들어 나간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컴퓨터통신을 모르면 얘기를 나누기 어렵게
됐다.

기성세대는 이들에게 뒤질세라 서둘러 컴퓨터 앞에 다가앉고 있다.

컴퓨터통신이 만드는 가상공간, 이른바 "사이버스페이스"는 새로운
광고무대이자 무한한 잠재시장이다.

소비자들은 이곳에 들어가 시장정보를 얻는다.

컴퓨터통신이 펼쳐가는 우리사회의 새 모습을 시리즈로 점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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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28일 오전 대구에서 발생한 지하철공사장 가스폭발사건을
가장 신속하고 정확하게 보도했던 매체는 막강한 위력을 자랑하는
신문 방송이아닌 컴퓨터통신이었다.

사건 발생직후 장혜진씨(SN1933J)가 하이텔 게시판에 제1보를 올렸고
인근에서 사건을 목격한 노병철씨(rhbc)가 4분뒤에 현장의 처참한
상황을 알려왔다.

뒤이어 대구시민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격려의 글이 계속됐고 이의
보도를 게을리한 방송사에 대한 항의의 글도 잇달아 게재되는가 하면
당시 공보처장관의 퇴진을 위한 서명운동까지 이어졌다.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미증유의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통신은 대활약을
벌였다.

90여명의 컴퓨터통신 자원봉사대가 각 병원 영안실과 사고현장,
교대체육관을 연결하는 온라인망을 운용, 발굴된 주검에 대한 정보를
시시각각 제공했다.

사고현장의 봉사대원은 주검이 발굴되자마자 사체상태와 유품 안치병원
등을 입력하고 영안실에 나가있는 자원봉사자는 경찰이 파악한 자료를
실종자가족들이 있는 교대본부에 연락, 완벽한 정보체계를 구축하며
애타게 가족을 찾고 있는 이들에게 큰 도움을 줬다.

지난해 하이텔 큰마을란에 김태호씨(하이텔 24frame)는 인기그룹
룰라의 "천상유애"라는 곡이 일본가요의 표절이라는 글을 올렸다.

1주일만에 3천여명이 이 글을 전송받는등 관심을 불러모으다 뒤이어
언론도 이를 보도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컴퓨터통신은 이같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기존 언론매체가 담당하지
못하는 새로운 정보전달 수단으로, 여론형성의 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속도와 광역성에서 방송과 신문의 벽을 허물고 있어 의사소통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정보전달자와 수용자가 분리돼 있어 일방적인 의사소통만 가능하던
신문 방송 등 매체와는 달리 통신에서는 이용자 모두가 기자가 돼 특정
사건을 기사화하고 논평하며 동등한 입장에서 토론을 벌여나가고 있다.

여론형성의 "발전소"역할을 하는 하이텔,천리안의 토론의 광장에는
"여성의 적극적 성표현"에서 "MBC파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놓고 수백명이 발언권을 갖는 초대형 토론이 매일 열리고 있다.

갖가지 평론과 분석,정보의 보고인 "게시판"도 기존 언론과는 판이하게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신문이나 방송사에서 기사가치를 판단,보도하는 것과는 달리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 온갖 관심사를 놓고 각자의 의견이 제한없이 실린다.

방송의 몫이었던 생중계도 통신에서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94년 미국월드컵 한국팀경기, 지난해 열렸던 민주노총 출범식, 15일
밤 열린 한총련 출범식 하나하나도 게시판을 통해 생중계됐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준 사건들이 터졌을 때마다
여론의 향배를 읽기 위해 컴퓨터통신이 인용되는 것도 일반적인
보도행태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책임있는 여론형성의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아직 미흡한 점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1월 무궁화 2호위성이 발사됐을 때 "무궁화위성이 폭파됐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 각 언론사로 문의전화가 쇄도하는 현상이 나타났는가
하면 개구리소년 실종사건과 관련 "군부대훈련도중에 사살됐다"는 글이
통신에 오르기도 했다.

아직까지 이같은 악성루머가 컴퓨터통신에 실려도 이를 규제하는 방법은
경고나 회원자격 박탈에 그치고 있다.

이에대해 정부도 "전기통신사업법"을 통해 법률적 규제방안 마련을
검토하고 있으나 지나친 규제를 가할 경우 자유로운 정보교환을 차단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지적돼 아직 방침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PC통신 기획관리본부 김철수 과장(35)은 "컴퓨터통신은 새로운
민주주의적 여론형성 실험장인 만큼 법적인 규제보다는 통신이용자들
스스로가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