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국제인증을 받은 맹인안내견조련사가 등장한다.

재미교포 수잔 리(한국명 임덕성.29)가 바로 그 사람.


중앙개발 소속인 수잔은 지난해 12월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떠나 그곳 왕립
맹인기금의 안내견센터에서 개설한 4년과정의 조련사코스를 밟고 있다.

국내에도 조련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국제공인기관에서 정식으로 배운 조련
사는 전무한 실정.

수잔이 과정을 마치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국제인증을 받은 맹인안내견 조
련사로서 일하게 된다.

수잔은 9살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건너간 후 서부의 명문 캘리포니아대 데
이비스분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에서 기독교육학
석사를 이수한 재원.

버클리에서 만난 동갑나기 남편 이개성씨는 지금 세인트 루이스대학원에서
국제법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누가 봐도 장래가 보장돼있고 결혼까지 한 수잔이 한국에선 생소하기만 한
맹인안내견 조련사과정을 밟게된 것은 맹인인 아버지 임형곤씨(58)가 한국사
회에서 받았던 냉대와 멸시때문이었다.

부친의 손을 잡고 거리를 다니거나 버스를 탈때 그녀는 많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느껴야 했다.

"아침에 장님이 지나가는 걸 보면 재수없다"는 욕설을 들을땐 가슴이 찌어
지는듯 아프기까지 했다.

어린 수잔의 뇌리에 각인된 이같은 기억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 두고두고 한
으로 맺혀있다.

삼성아메리카의 반도체구매팀에서 근무하던 수잔은 지난해8월 우연찮게 중
앙개발이 인터넷을 통해 낸 맹인안내견 조련사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해 선
발됐다.

그러나 결혼한 그녀로서는 조련사교육을 받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성장과정을 알고 있는 남편의 이해로 커다란 갈등없이 조련사길을 택하게 됐
다.

부부가 서로 떨어져 사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한국의
맹인들을 돕자는 취지에서 기꺼이 허락한 것이다.

수잔은 요즘 아침8시반에서 오후 5시반까지 오전 오후로 각각 3시간씩 맹인
안내견들을 조련하고 있다.

개를 데리고 버스나 엘리베이터를 타는가 하면주택가를 거닐기도 한다.

그밖에도 개의 성격테스트 걸음걸이테스트 약주기 견사청소 개청소 등의 일
이 고단하지만 재미있고 보람을 느끼고 있다.

안내견이 있으면 맹인들이 혼자서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독
립심도 길러져 그만큼 활동영역이 넓어지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역할
도 원활히 수행할수 있게 된다.

뉴질랜드의 경우 전체맹인 1만명의 1.7%가 안내견을 쓰고 있으나 맹인수가
22만여명에 달하는 한국에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금까지 10마리가 분양돼 활동중이고 용인자연농원내에 래브라도 리트리버
40마리(새끼 5마리 포함)가 훈련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 맹인안내견들을 길러낼 꿈에 부풀어 있는 수잔은 장애인에 대한
의식과 제도가 많이 바뀌어야한다고 지적한다.

"한국도 법제나 교통체계 등이 장애인에게 편리하도록 기업이나 학교, 그밖
의 기관과 단체들이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합칠 때가 됐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경제력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준 아닙니까"<채자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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