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혁명에 가까운 질서재편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전직대통령의 부정축재와 군사반란 등으로 사법심판대에 오르고 있는
한국의 경우는 이와같은 소용돌이의 한 예에 불과하다.

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같은 사람들의 눈에는 컴퓨터와
전자통신의 발달에 따른 정보화시대의 도래로 검은 연기를 내뿜는
굴뚝과 한해 수백만대의 자동차를 토해내는 거대한 공장들은 한낱
산업사회의 구시대적 상징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전통적 경제학자들이 즐겨쓰는 "규모의 경제"란 용어도 정보화시대에는
허구적 분석의 틀로 전락해 가고 있으며 "제3의 물결"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방법이 제시돼야 한다는게 토플러 박사의 주장이다.

농업사회와 산업사회의 인식과 틀이 무너지고 큰것보다는 작은것,
공장보다는 가정,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가 중시되는 가운데
지식이 "힘(권력)의 이동" (Power Shift)을 좌우하고 있는 것이
토플러박사의 진단이다.

한국경제신문사는 이같은 새 시대적 흐름을 간파하고 설파하는데 있어
선구자적 역할을 해온 앨빈 토플러박사와 양봉진 본사 경제부장의
대담을 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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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봉진 경제부장 =귀하는 구질서가 무너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고
또 그렇게 됐습니다.

한국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멕시코 이탈리아 등에서도 전직 최고
권력자들이 형사 소추를 받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관행"으로 여겨졌던 나름대로의 질서와 권위가 전면 부정되고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피할 수 없는 현상전개라고
여겨집니다만.

<> 앨빈 토플러박사 =우리는 우선 "새로운 질서를 움직이는 주체가 과연
무엇인가"하는 의문을 가져야 할 것으로 봅니다.

요즈음 전개되고 있는 정치경제적 현상들은 "권력의 독점과 중앙집중에서
분권화로, 권위주의에서 참여 민주주의로"의 전이되는 과정이라고 봐야
합니다.

한국 이탈리아 멕시코 등 공업화된 나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빚어지고 있는
이와같은 일련의 사건은 "국가중심의 사고"와 공업화 내지는 산업화로 대변
되는 "제2의 물결"에서 정보화가 주도하는 "제3의 물결"로 한창 변모되는
현상에 불과합니다.

컴퓨터와 통신의 발달로 빚어지고 있는 제3물결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정보화의 빠른 진전에 따라 밀실에서의 공작이나 정보독점을 통한 권력의
전횡이 불가능해지고, 대신 사회구성원들의 폭넓은 여론 수렴을 통한
민주적 질서가 확산돼 간다는 점입니다.

언론이 활성화되는 것은 물론이고요.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내 관료주의나 중앙집중적인 의사결정 관행은 발을 붙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보다 분권화되고 자율적인 경영시스템으로 옮겨갈 수 밖에 없는 상황
입니다.

<> 양봉진 경제부장 =한국의 경우는 그런 변화의 진척이 다른곳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기업들도 새로운 상황에 온전히 적응하기 위해 진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현 정부가 단호하게 추진하고 있는 부패 척결은 제2물결 시대의
유산을 청산한다는 의미에서 시대 흐름과도 맞아떨어지는 작업이라고
보는데.

<> 앨빈 토플러박사 =물론이지요.

한가지 강조한다면 부패 척결을 위해서는 근원적 처방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요즘 한국에서 밝혀지고 있는 구시대의 부패는 그동안 한국 사회가
고도 압축성장과정에서 누적해온 내부적 모순의 총체적 산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정치권력 행정권력 기업들이 얽히고 설켜 온 결과 "거대 부패(mega
corruption)"를 잉태하게 됐다고 봅니다.

부패는 크게보아 세가지로 나눌수 있습니다.

정치와 행정권력의 왜곡에서 비롯되는 거시적(macro)부패가 있는가 하면,
기업간 또는 개인간의 사사로운(mini)부패도 있고, 그보다 훨씬 은밀하고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미시적(micro)부패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시급히 척결돼야 할 것은 거시적 부패입니다.

거시적 부패를 발본 색원하기 위해 반드시 전제돼야 할게 행정편의적
규제의 철폐라고 생각합니다.

세금징수 정치자금 건설입찰 등 다양한 형태로 오고가는 검은 돈의 거래가
발을 붙일 수 있는 건 이런 규제때문이며 바로 이런 규제가 온실을 만들어
주고 있다고 봅니다.

<> 양봉진 경제부장 ="부정부패는 규제를 먹고 산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도상의 개혁만으로 부패가 완전히 근절될 수는 없다고 보는데.

<> 앨빈 토플러박사 =부패란 게 꼭 공적인 조직에서만 생기는 건 아닙니다.

민간 부문내에도 부패는 존재합니다.

구매부서등에서 자행되는 부패상은 더 지저분한 것일수 있습니다.

이를 근절하기 위해 필요한 건 내부고발자(whistle-blower)들이 활성화돼야
합니다.

언론의 활발한 기능도 필수 불가결합니다.

잘못된 일은 끝까지 파헤치는 참된 언론 활동이 끊임없이 이어져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부패가 발생하는 데는 그것을 받쳐주는 왜곡된
시스템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시스템을 혁파하지 않는 한 부패의 뿌리는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례를 들어 봅시다.

제가 아는 멕시코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살리나스전대통령이 재임
기간중의 독직으로 국외추방됐음에도 불구하고 멕시코에선 부패가
사라지기는 커녕 요즘들어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하위직 공무원들은 이제 비리가 적발될 경우를 감안한 "위험수당"까지
챙기고 있다고 하더군요.

<> 양봉진 경제부장 =부패의 경우도 그렇습니다만 과거 질서를 상징해 온
갖가지 요소와 현상들이 일거에 부정되면서, 새 질서가 모색되고 있는게
요즘 세계 각국에 공통된 현상인 것 같습니다.

특히 귀하가 저술한 "권력이동"에서 요즈음에 전개되고 있는 구질서 파괴
움직임은 앞으로 전개될 본격적인 "권력 이동전쟁"과 비교하면 작은 다툼
정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귀하가 말하는 "거대한 전쟁"은 언제쯤 본격화될 것으로 보시는지요.

또 그 전쟁에서 어느 지역이 최종적인 승자로 남을 것으로 봅니까.

<> 앨빈 토플러박사 =저는 그 시기가 조만간, 늦어도 향후 5~10년내에
닥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전쟁에서 가장 유력한 승리자는 아시아쪽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아시아는 농업화라는 제1 물결을 가장 먼저 시작했으면서도 제2 물결
(공업화)에서는 유럽과 미국에 뒤처졌던 지역입니다.

그러나 일본을 비롯해 한국 싱가포르 대만 등은 후발 주자의 약점을 딛고
당당히 공업화를 이뤄냈습니다.

그 여세를 몰아 최근 고개를 들고 있는 제3 물결(정보화)에서도 상당한
기반을 갖추고 있다고 봅니다.

반면 유럽쪽은 그 반대의 경우라고 봅니다.

공업 분야에서의 눈부신 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농업 부문에 대한
과도한 정부보조 같은 구태의연한 제도를 떨치지 못하고 있는게 단적인
예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제2물결 시대의 유산인 대기업에 대한 투자집중과 이로인한 관료주의
체질을 못벗고 있습니다.

대량생산시대에나 유용했던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에 대한
집착을 털어내지 못한채 기업합병이 아직도 잇달고 있는게 유럽의 현실
입니다.

그러다보니 제3물결에 제대로 올라타기가 어려울 수 밖에요.

<> 양봉진 경제부장 =미국의 경우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앨빈 토플러박사 =미국도 제대로 하고 있다고는 보고 있지 않습니다.

미국은 무엇보다도 아시아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협력 관계를 강화해야
합니다.

그러나 미국정부는 아직도 유럽중시.아시아경시라는 잘못된 관행을 고치지
않고 있습니다.

단적인 예가 클린턴대통령이 지난달 일본 오사카에서 열렸던 APEC(아.태
경제협력체) 지도자회의에는 불참해 놓고, 케케묵은 북아일랜드문제를 처리
하기 위해 아일랜드나 이스라엘 같은 유럽쪽 국가들을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습니다.

이건 명백히 클린턴 행정부의 전략부재, 장기적 사고방식의 부족에서 비롯
되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클린턴이 유럽국가들을 기웃거리고 있는 건 자신의 대통령 재선을 위해서는
유권자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유럽계 국민들의 눈길을 끌고 환심을 사자는
정략적 발상에서라고 봅니다.

좀 폄하한다면 클린턴의 관심사는 국내 TV의 저녁 6시뉴스에 자신의 동정이
톱뉴스로 보도될 수 있느냐 아니냐인 것 같습니다.

장기적 안목이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말하건대 미국의 미래는 유럽이 아닌 아시아에 달려 있습니다.

<> 양봉진 경제부장 =아시아도 내부적으로는 각각 처한 사정이 다릅니다.

일본은 거품경기가 꺼지고 난뒤 극심한 불황과 엔고의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중국은 등소평 사후의 정치권력이 안정될 수 있느냐가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또 동남아국가들은 EU(유럽연합) NAFTA(북미자유무역지대) 등에 대응해
독자적인 아시아국가들만의 블록을 결성하려는 움직임을 가시화하고
있습니다.

<> 앨빈 토플러박사 =일본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당장은 거품경기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동안 축적해온 자본력이나
경제적 저력으로 볼 때 조만간 경제가 회복될 것으로 낙관합니다.

문제는 중국이지요.

등의 후계구도가 강택민을 중심으로 잘 갖춰져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단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과거 모택동이 자신의 후계자로 화국봉을 임명했습니다만 화는 1년도 채
못버티고 실각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한동안 권력투쟁으로 중국의 내부 에너지 소모가 컸습니다.

저는 등의 사후 중국이 정치적 안정을 되찾기까지 15~20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봅니다.

아시아국가의 독자적인 블록화 움직임에 대해서는 크게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총리같은 사람이 "아시아는 아시아사람끼리"를 슬로건
으로 내걸고 있는데, 이런 사고방식은 미국내 일부에서 "미국은 미국사람
끼리"를 주장하는 것과 똑같이 아주 위험한 발상입니다.

저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서부해안지역)과 아시아의 동부해안지역이 서로
개방돼 공유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양봉진 경제부장 =향후 동북아의 질서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하십니까.

<> 앨빈 토플러박사 =동북아에는 한국과 중국 일본이 위치하고 있지만
미국의 존재가 어떤 개념과 자리매김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리라 봅니다.

균형을 유지시킬수 있는 존재로서의 미국의 가치가 더욱 강조될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중국의 변화도 큰 변수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지금 많은 사람들은 중국이 등소평 사후에 여러개의 독립국가로
분할될 가능성이 있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견해를 "가능성이 극히 낮은 일"
이라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중국이 분할된다면 세계 정세에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키는등 연쇄
파장을 몰고 올 공산이 큽니다.

마찬가지로 요즘 한국 사람들이 구악을 일소하는데만 열을 올리고 있지,
군부등에 의한 반동쿠데타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은 거의 않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번쯤은 그런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고,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원리는 국가뿐 아니라 기업들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저는 주변의 정치인과 기업인들에게 "돌발적인 경우에 대비해서 항상
사고의 폭을 넓게 가지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 양봉진 경제부장 =그런 점에서 한국이 가장 신경써야 할 문제는 남북
통일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 앨빈 토플러박사 =물론이지요.

중요한 것은 통일 자체가 지상목적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섣부른 통일은 오히려 숱한 문제점만을 야기할 가능성이 큽니다.

독일의 경우가 좋은 예입니다.

동.서독은 다같이 제2물결을 치른 국가인데도 통일뒤에 현격한 경제력
격차등으로 내부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구서독인들은 구동독사람들이 어리석고 게으르다며 무시하고 있는게 현실
입니다.

한국의 경우는 남북간 경제력격차가 독일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입니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충격 요법이 아닙니다.

장기적 안목을 갖고 하나씩 통일에 대비한 준비를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 양본진 경제부장 =이번에 한국에 오신 것도 21세기에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격변의 시기에 가장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지요.

<> 앨빈 토플러박사 =교육의 개선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체제구축이
과제가 될 것입니다.

제3 물결시대의 두드러진 특징은 각종 정보의 홍수를 어떻게 소화하고
요리하느냐 하는 문제로 모아집니다.

이를 극복하는데 필요한 것은 시시각각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방대한 분량의
엄청난 정보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활용할수 있는 적절한 모델을 설정해
두는 일입니다.

이런 능력을 골고루 갖도록 하기 위해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교육이 필요
하지요.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시대의 흐름을 신축적으로 수용하면서 정보를
공유하는데 주력하는 일입니다.

일본의 자민당 통산성 경단련 등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해 온 구시대의
조직들이 몰락하고 있는건 자신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외부의 시대흐름과
새로운 정보에 귀를 막고 있던데 기인한다고 봅니다.

< 정리=이학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