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의 독립정신을 모범적인 기업활동으로 계승해 국내 최고의
인테리어 전문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있다.

사무용가구 설계/생산업체인 ''민인터내셔널''(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민영백대표(52)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의 가계도에 등장하는 독립투사들은 우리의 귀에 결코 생소하지 않은
인물들이다.

외할아버지는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예관 신규식선생이다.

신선생의 사위, 곧 민씨의 아버지는 임정에서 백범 김구선생의 판공실장
(비서실장)을 역임한 민필호선생이다.

현재 생존하고 있는 형 영수씨(72)와 누나 영주씨(72) 모두 광복군에서
활동했으며 영주씨의 남편(민씨의 매형)이 김준엽 전고려대총장이다.

여기에다 큰아버지인 민제호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과 그의 3자매(민씨의
사촌형제)까지 임시정부와 광복군에서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정부는 이들의 업적을 기려 지난 63년과 77년 두 차례에 걸쳐 이집안에
모두 10개의 건국훈장을 수여했다.

지난43년 중국 중경에서 태어난 민씨는 어린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아버님을 따라 여러 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어요. 일본군을 피해 중경에서
남경, 상해로 옮겨 다녔고 해방후에는 아버님이 외교관으로 일하게 돼 홍콩
과 대만에서도 생활했어요. 그 덕분에 남 못지않은 외국어 실력도 갖게
됐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 것의 소중함을 알아라''
''네가 일하는 분야에서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 일등이 되라''는 말씀
입니다"

부친의 이말은 그의 인생을 결정짓는다.

어릴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던 그는 홍익대 건축미술학과를 들어가고
70년 졸업을 하면서 종로구 와룡동에 "민설계"라는 인테리어 디자인회사를
설립한다.

설립 당시 직원이라고는 없었던 이 회사가 지금은 2백50여명의 근로자가
일하는 "민인터내서널"의 모체가 된다.

"제가 회사를 설립할 당시 인테리어산업은 국내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거의끌지 못했던 분야였습니다. 선조들이 잃었던 조국을 되찾으려 노력
했다면 저는 황무지를 개척해 보려 몸부림을 쳤다고나 할까요"

지난 25년간 한우물만 파 온 그는 이제 이 방면에서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게 됐다.

지난 82년 당시 공사비 40만달러에 이르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은행"
서울지점을 비롯 "시티은행" "체이스 맨하탄은행"등 세계적인 은행의 서울
지점과 "한국은행" "제일은행" 본사등 국내 유수의 금융기관의 사무실
인테리어는 거의 모두가 그의 손을 거쳐갔다.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의 70층짜리 호텔 "라펠시티"의 1천3백여개에 달하는
객실 역시 그의 솜씨로 꾸며졌다.

그리고 지난 91년에는 아.태지역 9개국 5백여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아시아.태평양 인테리어디자이너협회"의 초대회장을 맡기도 했다.

선조들의 가르침은 민씨의 사업능력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현재 "민인터내서녈"부설로 "서울인테리어디자인학원"이라는 전문
교육기관도 운영하고 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동제사''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해 중국으로 망명온
학생에게 독립정신을 심어 주셨습니다. 저의 아버님도 이곳 출신입니다.
저도 앞으로 한국적 미를 창조할 디자이너들을 배출하는데 온힘을
쏟겠습니다"

민대표의 각오는 대단했다.

< 윤성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