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초등교육기관의 효시인 교동국민학교(교장 유춘근.서울
종로구 경운동18)가 지난 18일로 개교 1백돌을 맞았다.

추석 연휴 관계로 24일 오후3시에 치러진 개교 1백주년 기념식에는
각계 저명인사를 비롯 동창 재학생등 5백여명이 참석해 우리나라
초등교육사의 한세기를 접는 뜻깊은 잔치를 펼쳤다.

교동국교는 19세기말인 1894년(고종31년) 10월 18일 왕실 자녀들의
신교육을 위한 관립교동소학교로 개교한이후 관립한성사범학교부속
소학교(1895) 관립교동보통학교(1906) 교동공립보통학교(1910) 경성
교동공립심상소학교(1938) 경성교동공립국민학교(1941) 서울교동공립
국민학교(1947) 서울교동국민학교(1950)로 교명을 바꿔가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1세기에 걸쳐 배출한 졸업생만도 3만3백75명. 이중에는 윤보선전대통령
(2회) 윤치영초대내무부장관(3회)을 비롯 소설가 심훈(5회) 동요작곡가
윤극영(7회) 아동문학가 윤석중(17회) 김상협전국무총리(23회) 김상홍
삼양그룹회장(26회)등 저명인사들이 즐비하다.

오세응 김기배(이상민자) 김원길(민주)의원. 김용준 헌법재판소장도 교동
국교출신이다.

개교당시 5~6명이었던 학생수는 일제하에서 학년당 2개학급을 유지하다
해방이후 학급수가 늘어나기 시작, 63년에는 최고인 5천2백50명의 재학생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70년대이후 도시공동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학생수도 급격히 감소해
현재는 전교생이 5백11명에 그치고 있다.

교사도 개교 당시에는 한옥 3채로 시작했으나 1900년대에 2층 목조건물로
확장됐고 1920년 이 건물이 소실되자 이듬해 2층벽돌건물이 다시 세워졌다.

27년에 벽돌 건물이 소실되자 18개 교실을 갖춘 3층 건물을 재건축했고
몇차례의 증축을 거쳐 현존 교사를 마련했다.

교동국교의 향수는 중학교 입시제도가 시행되던 68년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칭 명문중으로 일컬이지던 경기 서울 경복중에 한학급에서
평균 30~40명을 진학시켜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집안의 자녀들이 교동국교
에 입학하기 위해 몰려 들었다.

한 학급이 모두 경기중학교에 입학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남긴것도
바로 이무렵이다.

이처럼 영화를 누려온 교동국교도 한가지 가슴아픈 사연을 안고 있다.
6.25전쟁중 학교를 미군 켈로부대의 본부로 내줘 51년과 52년 두해에
걸쳐 졸업생을 배출하지 못한 것이다.

교동국교 동창회는 이번 개교 1백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약 7백명에
달하는 당시 5,6학년생을 찾아 졸업장을 수여하기로 하고 이날 기념식에서
재학사실이 확인된 39명에게 졸업장을 전달했다.

교동국교 교정에는 개교당시 심어진 회양목 한그루가 이미 1세기를
살아오며 교동의 역사와 같이하고 있다.

< 김상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