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 사진=연합뉴스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 사진=연합뉴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주택공급 부족을 마침내 인정했습니다. 김 장관은 지난달 3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아파트 공급이 2021년과 2022년에 일시적으로 준다. 5년 전에 인허가 물량이 대폭 줄었고, 공공택지를 취소했다. 그래서 공급이 줄 수 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아파트가 빵이라면 내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고 했지요.

정부가 그동안 '주택 공급은 부족하지 않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오던 입장을 바꾼 것입니다. 김 장관은 지난 7월10일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때까지만 해도 "올해 입주 물량이 서울 5만3000가구로 2008년 이후 가장 많다"며 "2022년까지 입주물량이 10년 평균보다 35% 많다"고 말했습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때 "도대체 정부는 무슨 통계를 근거로 그런 주장을 펴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통계청의 전국 주택건설 인허가 실적을 보면 5년 전인 2015년 76만5300호였습니다. 전년의 51만5200보다 25만호 정도 늘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주택건설 인허가는 이번 정부 들어 지속적으로 감소했습니다. 2017년 65만호, 2018년 55만호, 2019년 49만호로 하락 추세가 이어졌습니다. 금년의 경우 주택건설 인허가는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통계를 보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수년간 주택 공급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어쨌든 정부는 '주택 공급 충분'에서 '공급 부족'으로 입장을 바꿈으로써 지난 3년여간 24차례나 내놓았던 부동산 대책의 근거를 포기한 셈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하자 마자 심상치 않은 집값에 대해 '공급은 충분한데, 투기꾼들의 사재기로 부동산 시장이 불안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게 수요억제 일변도 정책 기조의 근거였습니다. 그래서 집을 살 때 내는 취득세, 보유중 내는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팔 때 내는 양도소득세 등을 일제히 올렸고, 주택담보대출에 이어 신용대출까지 옥죄었지요. 한마디로 집은 더이상 살 수 없게 한 것입니다.

여기에 소위 부동산 시장의 약자인 세입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임대차보호법 등을 개정해 전세값을 5% 이상 못올리게 하고, 계약갱신청구권도 임차인의 손에 쥐어줘 기존 2년에서 4년까지 거주를 보장했습니다. 이게 시장에선 전세값 폭등과 전세 매물 품귀로 나타나 소위 단군 이해 최악의 '전세 대란'이 발생했지요.

결국 정부는 인정하지 않지만 지금까지 내놓은 부동산 대책은 정책이 아니라 정치였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것입니다. 더 좋은 집에 살고 싶어하는 평범한 국민들에게 '투기꾼'이란 낙인을 찍고 온갖 규제를 동원한 것이 집값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지층의 표심을 잡기 위한 것이란 얘깁니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 대부분이 유주택자와 무주택자, 집주인과 세입자, 1주택자와 다주택자 등을 갈라쳐 갈등을 유발시키는 것들이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정부는 부동산 정치를 통해 무주택자, 세입자, 1주택자 등을 자기 편으로 만들 의도였겠지만, 결과는 전국민이 피해자로 전락한 것이었습니다.

과연 이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요. 지난 3년간 부동산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한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퇴하면 될까요. 정부 경제정책의 총책임자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책임을 뒤집어 쓰면 될까요. 아니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진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상조 현 정책실장에게 죄를 물어야 할까요. 더 중요한 것은 이들에게 지금 책임을 묻는다고 한들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세입자와 집값 폭등에 내집 마련 꿈을 잃어버린 무주택자, 늘어난 세금에 한 숨짓는 유주택자 등의 피해는 과연 누가 어떻게 보상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차병석 논설위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