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청담고가 서초구 잠원동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청담고의 새 부지로 거론되는 서초구 잠원동 스포츠파크.  /한경DB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청담고가 서초구 잠원동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청담고의 새 부지로 거론되는 서초구 잠원동 스포츠파크. /한경DB
대규모 정비사업을 진행 중인 단지들이 학군 수요를 잡고, 집값을 높이기 위해 명문고 유치에 나섰다. 지역 내에 명문 학군이 있으면 거주 수요가 꾸준하고, 집값도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편리한 교통망, 좋은 입지에 지어진 새 아파트라도 좋은 학교가 없으면 거주 수요는 한정적”이라며 “학군이 더해져야 비로소 집의 가치가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잠원동, 청담고 유치 ‘숙원 해결’

18일 서울교육청에 따르면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청담고는 지난 8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서초구 잠원동 스포츠파크 부지로 이전하는 방안을 알리는 설명회를 열었다.

집값 상승 마지막 퍼즐…"명문高를 모셔라"
잠원동은 일대에 재건축 사업장이 여러 곳 있지만 일반 고등학교가 단 한 곳도 없어 지난 몇 년간 고교 유치에 총력을 쏟았다. 잠원동 인근에서는 신반포4지구(3685가구), 신반포센트럴자이(757가구) 등 대규모 재건축 사업과 신반포19차(242가구), 르엘 신반포센트럴(596가구) 등 중소 규모 재건축 사업이 진행 중이다.

청담고처럼 기존 학교가 새로 조성되는 주거지역으로 옮겨가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 5월 강서구 방화동의 공항고는 마곡지구로 이전했다. 방화동 내 학생 수가 감소하는 반면 마곡지구는 새롭게 조성돼 학생 수요가 늘어나서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마곡지구가 새롭게 조성돼 학생 수요가 증가했다”며 “같은 권역 내 이동이라 기존 학생도 다니기 편하고, 위치가 좋아져 오히려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야구 명문’인 성동구 행당동의 덕수고(옛 덕수상고)도 일반계열(인문계)이 송파구 위례신도시로 이전한다. 특성화계열(실업계)은 종로구에 있는 경기상고로 통합한다. 고졸 취업률 하락으로 특성화고 인기가 하락하면서 덕수고를 비롯한 서울 특성화고 대부분이 신입생 미달 사태를 겪고 있어서다.

줄어드는 서울시 학령인구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 단지들은 학교를 신설하거나 타지역 학교를 옮겨오는 등 학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 정비사업 전문가는 “초·중·고등학교 신설 및 이전, 학군 배정안 등에 따라 이사 수요가 바뀌기 때문에 집값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새 아파트의 집값을 유지하려면 좋은 학교로 거주 수요를 잡아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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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학교 신설·이전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서울교육청은 학교 용지가 마련됐어도 해당 자치구 기준 학교당 학생 수 800명, 학급당 34명의 요건이 돼야 학교 추가 신설을 승인한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학령인구(만 6~21세)는 매년 급감하고 있다. 2010년 186만 명이던 서울시 학령인구는 2016년 149만8000명, 2018년 138만8000명으로 줄었다. 서울시는 학령인구가 2023년엔 114만5800여 명, 2028년엔 107만여 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정비사업을 통해 특정 동네 쏠림 현상이 심화해도 학교가 새로 들어서기 어렵다는 점이다. 자치구 내 전체 학생 수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재건축·재개발로 대규모 새 아파트가 들어서는 정비사업지에서는 학교 과밀화로 인해 이사를 가는 경우가 빈번하다. 서울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근거리 배정 원칙이 적용돼 바로 옆 단지라도 학군이 달라 가격차가 나는 경우가 많다. 노원구 중계동 학원가 내 을지초·중학교로 배정받는 중계청구3차는 지난 10월 전용면적 84㎡가 9억원에 거래되며 인근 다른 아파트의 같은 주택형보다 1억원 이상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명문고 유치’ 위해 주민 청원

학교 이전도 기존 학교 부지 매각 부진, 자금 마련 어려움, 자치구 간 갈등 문제로 무산되고 있다. 흑석뉴타운은 흑석9구역에 학교 용지를 확보하고 배문고 유치를 추진했지만 최근 무산됐다. 배문고의 관할구청인 용산구가 기존 용지의 용도변경을 거절해 매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흑석동은 새 아파트가 들어서며 학령 인구가 증가하고 있지만 고등학교가 한 곳도 없다. 이에 흑석뉴타운 주민들은 지난달 서울교육청 앞에서 ‘고교 유치’ 공약을 지켜달라고 집회를 열었다.

동대문구 전농답십리뉴타운에서도 고등학교 유치를 위해 29개 단지에서 ‘전농답십리 명문고 유치 촉구’ 1만 명 서명 운동을 했다. 주민들은 “학교가 부족해 자녀가 고등학교 올라갈 때쯤 어쩔 수 없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게 된다”고 항의했다. 서울 송파구에서도 재건축 후 입주한 지 10년 넘은 파크리오 주민들이 단지 내 고교를 남녀공학 학교로 변경하고 중학교 등을 신설해달라고 청원운동을 벌였다.

윤아영 기자 youngmon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