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용역업체 분쟁에 광명 이연아파트 주민들 '경매 폭탄'
분양금 다 내고 5년 살던 아파트 내달 경매로 넘어갈 판

"분양금 다 내고 5년째 살고 있는 내 아파트를 멋대로 경매에 넘긴다니, 말이 됩니까?"
경기도 광명시 해모로-이연아파트 주민 A(37)씨는 애써 마련한 아파트가 다음 달 경매에 넘어간다는 소식에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갈 처지에 놓인 건 A씨뿐 만이 아니다.

같은 단지 내 총 20가구나 된다.

아파트가 주민들의 의사와는 상관도 없이 경매에 부쳐지게 된 건 재건축조합과 용역업체 사이에 발생한 빚 분쟁 때문이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아파트를 지을 때 재건축조합(광육재건축조합)은 용역업체에게 15억원의 용역비 채무를 지게됐다.

문제는 재건축조합과 계약관계에 있던 용업업체 대표 J 씨가 2011년 아파트를 짓기 전 지인 두 명에게서 빌린 돈을 갚지 않은 데에서 비롯됐다.

J 씨는 돈을 갚는 대신 조합으로부터 받기로 한 용역비 15억원에 대한 권리를 채권자들에게 지불보증각서 형식으로 넘김으로써 조합이 채무자가 됐고, 조합을 상대로 소송을 내고도 돈을 못받은 채권자들이 지난 3월 소유권 이전을 위한 등기 절차가 시작되자 무작위로 일반분양 세대 20가구를 골라 경매에 부친 것이다.

채권자 두 사람은 서로 아는 사이인 J 씨에게 각각 7억원과 3억원 가량을 빌려준 뒤, J 씨를 대신해 지불보증 각서를 쓴 조합을 상대로 2011년 10월 소송을 제기했다.

2012년 초 1심에 이어 항소심과 지난해 5월 대법원 상고심에 이르기까지 채권자들이 모두 승소했다.

조합은 1심에서 패소한 직후 15억원을 조합원 세대에 분담시키기 위해 주민설명회까지 열었지만 추가비용 부담을 거부하는 조합원들의 반발로 포기했다.

이 아파트 주민들의 인터넷 카페에는 2012년 5월 26일자로 '15억원 비용부담 설명회 참석 보고'라는 제목의 글이 남아 있다.

글쓴이는 "추가 건축물 신축과 관련하여 신규사업비 증가는 15억이라며 그 부담은 조합사업비로 부담하게 된다고 분명히 명시했다"며 조합이 추가부담금을 물리려 하는 처사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이런 상태로 4년이 흐른 뒤 지난 3월 21일 소유권 이전을 위한 등기 절차가 시작되자 채권자들이 기민하게 움직였다.

등기소가 보존등기만 해 놓고 신탁등기를 해 놓지 않은 틈을 타 채권자들이 경매를 신청한 것이다.

이 아파트 전체 1천267세대 중 조합원분 924세대는 소유권이전등기(보존등기) 및 신탁등기 절차가 동시에 완료돼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조합은 일반분양 343세대에 대한 서류를 제대로 구비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광명등기소는 보존등기만 해 놓고 정작 소유권 보전에 필요한 신탁등기를 미뤄놓았다.

채권자 두 사람은 일반분양 343세대의 소유권이 임시로 조합에 넘겨진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3월 24일과 29일 각각 5가구와 15가구씩 101∼103동에서 무작위로 20채를 골라 강제경매를 신청한 것이다.

광명등기소는 무려 한 달이나 걸려 조합이 미비된 서류 등을 모두 갖춘 뒤인 지난달 20일 신탁등기를 완료했지만, 등기부등본 상의 채권 순위에서 일반 분양자들은 3순위로 밀려나 버렸다.

2순위자인 두 명의 채권자가 1순위자인 광육재건축조합을 상대로 강제경매를 신청한 상태로 3순위자는 채권 행사를 할 수 없다.

졸지에 집을 잃을 처지에 놓인 A 씨는 "조합원 가구들의 경우처럼 보존등기와 신탁등기를 동시에 하거나, 신탁 등기를 한 달 뒤에 할 것 같으면 보존등기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한 달 동안 아파트 소유권이 붕 뜬 상태에서 채권자들이 치고 들어온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신탁등기는 보존등기 상태에서 다른 채권자들이 아파트 소유권을 가로채는 것을 막기 위한 절차로, 등기소가 아파트 소유권 보전 장치를 해제한 셈이다.

또다른 주민 B 씨는 "5년 전 조합과 채권자들 사이에 소송이 있었고, 당시 채권자들은 조합이 조합원 가구주들에게 15억원을 부담시키려다 포기한 뒤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며 "등기소가 신탁등기를 미뤄 시간을 벌어 주자 채권자들이 그 틈에 경매를 신청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B 씨는 "모든 문제가 용역업체 대표 J 씨로부터 시작됐고, J 씨는 얼마전 아파트관리사무소에서 열린 회에 '광육재건축조합 대행사 대표'라는 직함으로 참석하는 등 지금도 사실상 조합을 대표하고 있다"며 "재건축조합장이 왜 허수아비 채무자 노릇을 하는지 의심스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육재건축조합장(조합장 신응태)은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경기도 광명시 광명6동에 있는 해모로-이연아파트는 2011년 9월 완공됐으나 조합이 토지 두 필지에 대한 소유권을 확보하지 못해 소유권이전등기가 계속 미뤄져오다 지난해 조합이 토지 매입을 완료하고 광명시로부터 준공 인가를 받아 최근 소유권 이전을 위한 등기 절차가 시작됐다.

집을 빼앗길 처지에 몰린 주민들은 "경매 소식이 알려지면서 부동산 브로커들이 수시로 찾아와 세입자 유무 등 거주 현황을 탐문하는 통에 정신적으로도 힘들고, 내달 경매절차가 개시되지 않도록 시청과 법원, 등기소 등 여러 관계 기관들을 찾아다니느라 생업이나 직장 생활에도 지장이 많다"고 토로했다.

(광명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kj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