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법무법인과 외국계 회사, 대기업들이 모여 있어 고액 월세에도 수요가 꾸준한 서울 광화문 인근 사직동 일대. 설지연 기자
대형 법무법인과 외국계 회사, 대기업들이 모여 있어 고액 월세에도 수요가 꾸준한 서울 광화문 인근 사직동 일대. 설지연 기자
서울 25개 자치구 중 아파트 월세 거래비중이 가장 높은 종로구에서 ‘월세 시대의 두 얼굴’이 나타나고 있다. 도심권 업무지구에 가까운 광화문 일대와 구 외곽 지역 월세 시장 모습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등 대형 법무법인과 대기업들이 즐비한 광화문 인근 내수·사직동 일대는 보증금이 적은 고액 월세에도 수요가 끊이지 않는다. 반면 도심과 떨어진 창신·숭인동 일대는 반(半)전세 형태로 주로 거래되고 있음에도 월세 수요가 적어 세입자를 찾는 데 몇 달씩 걸린다.

◆고액 월세 수요 넘치는 광화문

광화문·시청 일대 '전세 멸종'…월세 270만원 넘어도 나오는 족족 계약
11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1~3월 종로구의 아파트 전·월세 거래 건수 361건 중 월세(준전세 및 준월세 포함)는 184건으로 전체의 50.9%에 달했다. 준전세와 준월세는 보증금 및 월세 규모에 따라 나뉘지만 모두 월세 거래에 포함된다. 같은 기간 서울시 전체 아파트의 월세 비중은 37.8%다. 종로구는 업무·상업시설이 밀집해 있어 직장인 임대수요가 두텁다. 반면 다른 자치구에 비해 아파트 등 주거시설이 적다. 매매와 전·월세 공급량이 모두 많지 않다.

종로구에서도 시청·광화문 등 도심 업무지구와 밀접한 내수·사직·무악동 일대에선 임대차 거래 10건 중 8~9건이 월세다. 시세도 높게 형성돼 있다. 종로의 대표적인 대단지 아파트인 사직동 ‘광화문 풍림스페이스본’의 전용면적 84㎡ 주택형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270만원에 매물이 나와 있다. 59㎡형도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가 220만원에 달할 정도로 비싸지만 세입자 문의가 많다는 것이 인근 중개업소들의 얘기다. 지난 5일 찾은 이곳에선 아파트와 오피스텔 1030가구 중 전세 매물이 단 한 건에 불과했다.

문종석 풍림공인 대표는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월세로 전환하는 집주인들이 계속 늘고 있다”며 “로펌과 대기업, 병원 등에 근무하는 변호사, 직장인, 의사 등이 주변에 많아 고액 월세라도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업자는 “전문직 종사자 중에선 자기 집을 강남 등에 두고 직장이 가까운 이 동네 아파트에 월세를 구하는 경우가 있다”며 “전세는 월세보다 계약 기간이 길고 목돈이 들기 때문에 처음부터 월세를 찾는 것도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외국계 대기업 종사자와 서울 시내 대학의 외국인 교수 등도 상당수 종로구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세 수요 적은 창신·숭인동

종로구 동쪽 끝에 있는 창신·숭인동은 광화문 일대와는 다른 이유로 월세 비율이 높다. 이 일대는 동대문 상권 배후 주거지로 노후한 단독·다가구 주택들이 즐비하다. 서울 한복판에 있지만 낙후된 지역 중 한 곳으로 꼽힌다. 2007년 4월 재정비촉진지구(뉴타운)로 지정됐다가 주민들의 반대로 2013년 10월 지구지정이 해제된 뒤 2014년 5월 도시재생선도지역으로 지정됐다

주변 중개업소에 따르면 이 일대 아파트 및 주택의 월세 비중은 전체 임대차 거래의 60~70%를 차지한다. 숭인동 ‘종로청계 힐스테이트’ 전용 84㎡형은 보증금 2억5000만원, 월세 100만원에 세입자를 찾고 있다. 전세 보증금은 4억원대 초반에서 형성돼 있다.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130만원에 매물로 나온 59㎡형은 몇 달째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박준우 삼원공인 대표는 “전세 물건이 워낙 없다 보니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월세라도 들어가는 것이지 처음부터 월세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전세가 나오면 집도 안 보고 계약할 정도이지만 월세는 3개월 이상씩 거래가 안 될 때도 많다”고 말했다.

높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는 세입자들도 있다. 주로 동대문시장에서 일하는 영세업자와 종업원들이다. 창신동 중개업소 관계자는 “동대문시장 상인 대부분은 도매로 물건을 사는데 목돈을 쓰고 푼돈으로 월세로 낸다”며 “높아진 월세에 부담을 느낀 세입자들이 인근 동대문구 제기동이나 성북구 안암·보문동 등 집값이 싼 곳으로 많이 빠져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