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은행, 보증·중도금 대출 깐깐하게…간접규제 강화
정부도 암묵적 동의…건설업계 "인위적 공급 조절" 반발

최근 주택 분양물량이 급증한 가운데 정부와 공기업, 시중은행 등이 전방위에 걸쳐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아파트 분양물량이 52만가구를 넘어서 2007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한데다 올해도 만만치 않은 물량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일시적이나마 공급과잉 우려가 커진 때문이다.

시중은행들은 아파트 중도금 대출을 까다롭게 진행하는가 하면 아파트 분양 및 사업자금, 중도금 대출 등을 보증해주는 주택도시보증공사는 관련 보증 심사를 강화해 사실상 '간접규제'를 통한 공급 조절에 나섰다.

건설업계는 이에 대해 "겨우 살아난 주택시장을 죽이는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 '선제 대응' 앞세워 보증·대출 심사 강화…정부도 묵인
2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연초 수립한 올해 주요 건설사의 아파트 공급 물량은 37만여가구로 작년보다 30% 줄어들 전망이다.

작년에 52만가구가 분양되면서 공급과잉 논란이 일자 건설사들이 현재 확보된 사업지만으로 보수적으로 사업계획을 잡은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최근 3년 평균 물량(31만4천가구)보다는 많은 수치다.

특히 정부와 전문가들은 지난해 아파트와 연립·다세대 등을 합한 주택 인허가 물량이 76만가구를 넘어선 것에 주목한다.

이 물량은 주택 공급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를 만들어 주택 200만호를 짓던 1990년도의 75만가구를 웃도는 역대 최대치다.

이러한 물량이 올해 한꺼번에 주택시장에 쏟아질 경우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시장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이러한 주택 과잉공급에 대한 선제적 대응 차원에서 올해 주택사업자금융(PF) 보증과 중도금 집단대출 보증 심사를 강화하겠다고 공언했다.

주택사업자금융, 일명 'PF대출' 보증은 건설사들이 계약금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 자금(토지대금 등)을 은행에서 빌리기 위해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보증을 받아 신용을 보강하는 것이다.

중소 건설사 등은 자체 신용도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어렵지만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보증을 받으면 낮은 금리로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

공사는 앞으로 이러한 PF대출 보증 지급 조건을 까다롭게 평가해 사업성이 없고 미분양이 우려되는 곳은 보증을 해주지 않는 등 선별적으로 보증서를 발급하기로 했다.

중도금 대출 보증도 분양성 등을 고려해 까다롭게 진행한다.

시중은행은 일부 대형 업체를 제외한 건설사들에게 아파트 중도금 대출을 해주면서 주택도시보증공사나 주택금융공사 등의 보증을 요구하는데 앞으로 이러한 보증 심사도 깐깐하게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공사 관계자는 "중도금 대출 보증 심사를 강화하면 공급이 많거나 심각한 미분양이 예상되는 지역은 보증서 발급이 안되거나 미뤄질 수 있다"며 "PF 보증 심사 강화는 시장 여건에 따라 신규로 추진되는 사업 물량을 조절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 사업자의 부도시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잔여 공사와 분양대금을 안전하게 관리해주는 분양 보증은 입주자 보호를 위한 정책보증으로 인위적인 보증 제한이 어렵지만 필요할 경우 공사가 건설사와 공동 자금관리를 맡는 등의 방법으로 안전성을 높이기로 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도 내심 이러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분위기다.

국토부 관계자는 "인위적인 규제를 통해 공급 물량을 축소할 계획은 없다"면서도 "다만 보증 심사 강화는 공급 조절 효과 뿐만 아니라 공사의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도 필요한 조치"라고 말했다.

시중은행은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자체 리스크 관리에 착수해 중도금 대출 등 집단대출을 선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입지여건, 분양성 등을 고려해 선별적으로 대출을 지원하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집단대출 규제 강화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중도금 대출 규제 의사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금융권의 집단대출에 대한 건전성 관리를 강조하고 있어 은행들이 스스로 대출을 축소하는 형국이다.

한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지난해 주택 공급물량 증가로 중도금 대출 등 집단대출이 급증하면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주택시장이 꺾일 가능성에 대비해 보수적으로 대출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건설업계 "사실상 공급 규제" 반발
건설업계는 이런 조치가 사실상 직접적인 공급 규제나 다름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사업지가 대부분 소진돼 올해 예상 공급물량이 30% 가량 줄어드는 등 공급과잉 우려가 없는데도 지나치게 사업을 제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중견 건설사의 관계자는 "은행이 중도금 대출을 중단하고 보증회사가 보증을 안해주면 사실상 자금조달 창구가 다 막힌다"며 "지자체가 직접 주택 인허가와 분양 승인을 제한하는 것을 빼고는 전방위적인 공급 조절 수단이 다 동원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시중은행의 중도금 대출 중단과 PF 대출 보증 심사 강화에 불만이 많다.

이미 작년 10월 이후 일부 건설사들은 분양을 해놓고도 중도금 대출 은행을 구하지 못해 낭패를 보고 있다.

최근 분양물량이 급증해 미분양과 입주 대란이 우려되는 지방 현장, 분양률이 저조한 수도권의 대단지 아파트, 건설사의 신용이 떨어지는 곳들은 특히 중도금 대출 은행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일부 현장은 올해 2∼3월로 1차 중도금 납부 시기가 도래했지만 아직까지 중도금 대출 은행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지난해 경기도에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분양한 한 건설사는 1차 중도금 납부 시점이 올해 3월로 다가왔으나 이 아파트의 중도금 규모만 약 1조원에 달하면서 대출 은행을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이 회사는 시중은행이 모두 대출을 거절해 현재 제2 금융권 서너곳을 통해 전체 중도금의 절반 규모만 우선 대출을 받고 나머지는 추가로 조달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회사 관계자는 "나머지 중도금 절반에 대한 대출 은행을 구하지 못하면 앞으로 신규로 계약하는 사람들에게는 중도금을 일부 유예해주는 등의 방법을 쓰든지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도금 대출 은행을 구한 현장들도 은행간 경쟁이 사라지면서 대출 금리가 작년 2.5∼2.7% 안팎에서 현재 3.5∼3.7%로 종전보다 1%포인트 높아졌다.

한 대형 건설사의 주택사업 담당 임원은 "주택시장을 살리기 위해 온갖 규제를 풀어줄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공급을 제한한다니 너무한 것 아니냐"며 "어차피 공급과잉이 우려되면 건설사 스스로 미분양을 우려해 분양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건설사의 관계자는 "은행들이 중도금 대출을 꺼리는 바람에 대출 금리가 높아지면서 은행의 이익만 불리고 분양계약자들에게는 피해로 돌아오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며 "무리한 규제는 분양성을 악화시켜 미분양 증가와 시장 침체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과거 전례로 볼 때 건설사들은 시장이 좋다 싶으면 무리하게 분양물량을 쏟아내는 경향이 있어 어느 정도의 '경고'는 필요하지만 지나친 규제는 독이 된다"며 "건설사도 또다른 규제를 만들어내지 않도록 스스로 공급 물량을 줄이는 등 리스크 관리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sm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