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적인 설계업체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공간건축)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는 등 날개 없는 추락에 건축계가 충격에 빠졌다. 공간건축의 심각한 경영난은 부동산 경기침체에 따른 설계 미수금 누적, 설계 용역업체 간 경쟁 심화, 경영부실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공간건축은 건축계의 대부로 불리는 김수근(1931~1986년)이 설립한 국내 1세대 설계사무소다. 건축계에서는 올해 공간건축 외에 많은 설계업체들이 생존의 기로에 설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건축계의 원조 공간건축

1960년 ‘김수근 건축연구소’로 출발한 공간건축은 1966년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와 합병한 뒤 1972년 공간연구소로 상호를 바꾸고 법인으로 새출발했다. 설립자 김수근은 전후 한국 건축의 암흑기에서 예술성과 작품성을 한 차원 끌어올린 건축계의 원로로 평가받고 있다.

1986년 김수근 타계 이후 승효상 이로재 대표가 잠시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후 장세양 소장(1947~1996년)이 경영을 맡았다가 이상림 건축가가 현재까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한때 600여명의 직원이 서울은 물론 미국 뉴욕, 필리핀 마닐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등 7개 도시에 사무실을 두고 세계 30여개 도시의 건축설계를 수행할 정도로 글로벌 건축설계업체로 성장했다.


공간건축은 반세기를 거치면서 기록에 남을 수많은 건축물 설계를 수행해 왔다.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대학로 아르코(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극장, 서울 지방법원청사, 남산 타워호텔, 을지로 정동교회, 서울경찰청청사 등이 공간건축의 작품이다. 경남 진주박물관과 김해박물관, 서울 마포구청사와 용산구청사, 대구 달성군청 등도 빠질 수 없다. 아직 준공되지 않은 작품으로는 광교신도시 경기도청사, 남극 장보고기지(제2기지) 등이 있다. 김종천 기안건축 소장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건축학도들에게 공간은 선호도 1위 설계사무소였다”며 “예술성과 창의성 높은 설계 저력을 가진 공간건축이 경영난에 빠진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부동산 장기 불황에 속수무책

공간건축은 2000년대 중반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사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조직에 걸맞는 수주가 뒷받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간건축은 문화회관 공공사옥 등 공공건축에 특히 저력이 있었다.

하지만 공간건축이 시장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예컨대 2000년대 초 주택시장이 활황기를 맞았을 때부터 주택 분야 설계를 소홀히했다는 것이다.

공간건축이 경영난에 빠진 결정적 계기는 서울 양재동 화물터미널개발사업(파이시티)에서 100억원대 설계 비용을 못 받게 된 것이다. 게다가 대형 공공공사는 턴키(설계·시공 일괄입찰) 방식으로 재편됐다. 이 분야에서도 경쟁사인 희림·삼우종합건축 등에 밀렸다.

설계업계 한 관계자는 “원래 공간건축은 디자인의 독창성이 뛰어난 회사였지만 2000년대 들어 공공건축물 수주 확대에 치중하는 바람에 설계 물량이 넘쳐났던 주택시장에서 손을 놓는 등 건축시장 트렌드를 따라 잡지 못한 것도 사세가 기울어진 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요즘은 디자인 우수성만으로 수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며 “공간건축은 작품성 외에 마케팅이 취약했던 것도 실적 부진의 요인”이라고 말했다.

설계 회사는 인력이 주요 자산인 데다 경제 상황에 맞춰 신속하게 구조조정하기도 쉽지 않다.

공간건축의 전직 임원은 “설계업체는 시스템이 아닌 사람에 의존하는 구조”라며 “인재를 양성해 내지 못하면 회사는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놓인다”고 말했다. 공간건축은 지난달 중순 법정관리를 신청한 상태다. 공간건축 관계자는 “조만간 법원의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며 법정관리 개시 기대감을 나타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