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능력평가 10위권에 드는 한 대형 건설사의 내년도 신규주택사업 계획은 제로다. 미분양 주택도 다 해소하지 못한 데다 내부적으로 명예퇴직을 실시하는 등 도저히 신규 사업을 할 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업체 사장 A씨는 “건설 경기가 바닥을 모르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며 “내년 초부터 줄도산 사태가 4~5년간 이어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분석한 국내 건설사들의 ‘생존 능력’은 위험 수준이었다. 부동산 공급업체(시행사)의 절반 이상이 자본잠식 상태였고, 일부 상장사를 제외한 대부분은 번 돈으로 이자도 못 갚는 상황이었다.

○1000원어치 팔아 32원 남겨

KDI는 21일 ‘건설 재무안정성에 대한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2000년 이후 국내 건설부문의 재무건전성 추이를 분석했다. 자산총액이 일정 기준 이상으로, 외부 회계감사를 받는 모든 기업들을 대상으로 했다.

분석 결과 지난해 이들의 부채비율은 233.5%를 나타냈다. 금융위기 당시 2008년(279.8%)보다는 소폭 개선됐지만 절반 이상이 자본잠식 상황인 시행사를 뺀 것이라서 큰 의미는 없다.

이들을 포함하면 부채비율이 400% 수준까지 치솟아 재무안정성이 크게 훼손된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잠식 상태인 시행사들의 부채규모는 총 70조원을 넘어섰다.

수익성은 꾸준하게 악화됐다. 이들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은 지난해 평균 3.2%로 2005년(8.0%) 이후 6년 연속 하락했다. 1000원어치를 팔아 32원을 남기는 데 그친 셈이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얼마나 갚을 수 있나 보여주는 이자보상비율은 54.2%까지 떨어졌다. 정상적인 영업 활동으로는 이자도 낼 수 없다는 의미다.

○시행사와 시공사 연쇄 부실 우려

KDI 조사 결과 부실위험에 처한 건설부문 회사 202곳 중 시행사가 144곳으로 시공사(58개)보다 배 이상 많았다.

부실위험 기업의 부채 13조원 중 9조4000억원이 시행사 몫이었다. 하지만 시공사들도 시행사에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나 집단대출에 대한 지급보증을 해줘 연쇄 부실이 우려된다.

더 큰 문제는 건설 경기의 부진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김성태 KDI 연구위원은 “취득·등록세 감면으로 부동산 거래가 일시적으로 늘어날 수는 있지만 시장 정상화와는 거리가 멀다”며 “건설사의 재무 건전성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4대강 사업 등 대형 토목사업이 일단락된 데다 경제가 성숙기에 접어들면 건설 투자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하락해 건설업계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있다. 게다가 관급공사도 최저가 낙찰제 등으로 이익을 내기 힘들어졌다. 대형사들은 주택부문 적자를 플랜트 등 해외영업본부가 벌어오는 수익으로 막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KDI는 국내 건설부문 사업체 수가 2000~2010년 45%나 급증할 정도로 비대해졌다며 산업 내실화를 위해서라도 강력한 구조조정을 유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은행권, 건설부문 ‘특별관리’

은행들은 부동산 공급부문의 부실을 특별 관리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위기 후 PF 사업이 좌초하고 중견 건설사·시행사들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신세가 돼 은행 손실이 커졌다”며 “요즘 은행의 여신 축소대상 1순위가 건설업이고 그 다음이 부동산 임대업”이라고 말했다.

송흥익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일본의 경우 1991년 부동산 거품 붕괴 당시 건설업체 부채비율이 550%에 달해 12년간 부채축소 과정을 거쳤다”며 “국내 건설사들도 부채를 줄이는 데 4~5년 정도 더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연구위원은 “건설수요를 인위적으로 부양하면 가계부채만 늘릴 가능성이 높다”며 “기업의 해외 진출 역량을 키워주는 게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김유미/김진수/이상은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