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보수 강화…'무조건 재건축' 안한다
서울시가 29일 아파트 수명을 50~100년으로 늘리는 ‘생애주기 관리시스템’ 도입을 발표했다. 분담금이 지나치게 많아 사업성이 떨어지는 고층아파트의 노후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현재 서울지역 5층 안팎 저층 아파트 대부분은 재건축이 끝났거나 추진 중이다. 남아 있는 10층 이상 중·고층은 용적률 등을 감안할 때 사업성이 떨어져 재건축이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렇지만 유지·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구조안전성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장기수선충당금 제도를 적극 활용해 아파트 수명을 늘린다는 것이 서울시 계획이다. 김윤규 주택정책과장은 “생애주기 관리시스템 도입은 서울시 주택정책이 공급 위주에서 관리로 전환하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무분별한 재건축 대신 유지·보수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서울 시내 전체 아파트는 3794개 단지, 128만5697가구에 이른다. 서울시는 이 중 300가구 이상, 또는 150가구 이상이면서 승강기 등이 설치된 약 100만가구에 ‘생애주기 관리시스템’ 적용을 의무화할 계획이다. 내년부터 관련 용역을 거쳐 단계별로 시행된다.

이렇게 되면 낡은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재건축을 추진하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트는 기존 정비사업 외에 주민들이 유지·관리(업그레이드)를 택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될 전망이다.

이미 재건축 추진위원회나 조합이 설립돼 있는 재건축 추진단지는 기존 사업을 계속 진행할 수 있다. 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시내 추진위원회가 설립된 재건축 추진 아파트는 9만가구 정도다. 서울시 관계자는 “재건축 추진 단지라고 해도 전기·배선 교체나 건축물 구조 등 반드시 필요한 수선 대상의 유지·보수 활동은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준공 후 최장 40년이 지나야 재건축을 할 수 있는 ‘재건축 허용 연한’ 기준을 이미 적용 중이고, 시장 침체로 재건축 분담금이 크게 늘어나 아파트 생애주기 관리시스템이 도입되면 고층아파트 재건축 사례는 크게 제한될 것”으로 내다봤다.

◆입주민 충당금 5~10배 증가할 듯

생애주기 관리시스템 도입으로 아파트 입주민이 내야 하는 장기수선충당금이 많게는 10배 가까이 오를 전망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행 충당금 적립액은 ㎡당 평균 79원 선이다. 학계에서는 이를 ㎡당 440~910원으로 현실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전용면적 85㎡ 아파트라면 현재 매달 6715원 에서 3만7400~7만7350원으로 오르는 셈이다.

서울시는 장기수선충당금을 별도의 출연기관 등을 세워 기금화하는 방안도 강구 중이다. 개별 아파트 단지별로 걷고 있지만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는 장기수선충당금을 출연기관 등에서 일괄 관리·집행하겠다는 구상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충당금 관리기관을 따로 세울 경우 서울시가 기금의 20% 정도를 출연해 운영하는 것은 물론 대규모 수선비용이 필요한 아파트 단지에 저리로 대출지원하는 방법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스템 단계별로 시행

서울시는 내년에는 입주자대표회의 관리소장 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2013년에는 ‘아파트 장기수선 전문위원회'를 설치, 아파트 수선에 대한 총체적 자문을 맡길 방침이다. 2014년부터는 장기수선충당금 기금화를 추진한다.

장기수선계획과 장기수선충당금을 제대로 집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실태조사를 거쳐 미흡한 곳은 제재조치도 취한다. 서울시는 △장기수선계획에 따라 주요 시설을 교체하거나 보수하지 않은 입주자대표회의의 대표자에게는 1000만원 이하 과태료 △장기수선계획을 수립하지 않은 사업주체나 장기수선충당금을 적립하지 않은 관리 주체는 500만원 이하 과태료 등을 물도록 할 방침이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