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지업체 K 회장은 3년 전 디자인을 전공하고 귀국한 딸에게 서울 가회동 한옥 한 가구를 사줬다. 사무실 겸 작품 전시공간으로 쓰라는 취지에서다.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딸도 전통문화 향기를 느낄 수 있는 한옥지역을 선호했다.

거래를 주선했던 시중은행 PB(프라이빗 뱅커)는 "유럽 등에선 역사적 발자취가 많이 남은 공간이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며 "이런 트렌드에 익숙해진 유학파들이 한국에서도 비슷한 공간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적 수요 대비하는 자산가들

10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 북촌 서촌 등의 지역에서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본격화되고 있다. 경복궁 인근 북촌과 서촌 한옥보존지역이 대표적이다.

북촌 일대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이곳 부동산을 사들이는 이들은 강남권 자산가들이다. 서울시 한옥문화과 관계자는 "북촌 서촌 일대 한옥은 비좁아 주거용으로 쓰기엔 불편하다"면서도 "사교 ·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매입하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삼청동 50년 토박이인 정창욱 경기부동산 사장은 "주거용이 아닌 공방 등으로 사용할 수있는 가회동 도로변 한옥은 3.3㎡당 8000만원을 호가한다"며 "최근 3년 동안 2배 이상 올랐지만 매입 수요가 꾸준하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공연장이 많은 홍대역 상권,부유층 자제들이나 연예인의 명품 소비 문화를 주도하는 청담동,고미술품 가게 등이 밀집한 인사동,인천 차이나타운 등이 급부상하는 것도 문화소비 트렌드와 연관이 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개발업체인 피데스개발의 김승배 사장은 "부동산에 문화와 스토리텔링을 담아야 관심을 끄는 시대가 됐다"며 "부동산 시장에서도 문화 요소가 가격을 좌지우지하는 현상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 가미한 부동산 개발도 본격화

부동산 소비 문화 흐름을 파악한 부동산 개발업체들은 문화 요소를 넣은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롯데자산개발이 제주도에서 VVIP층을 대상으로 분양 중인 아트빌라스는 5가지 공급유형 중 2개에 제주도 자연문화 요소를 넣어 설계했다. 건축가 겐고 쿠마가 오름을 형상화한 타입과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한 지중해풍 외관 타입이 그것이다. 분양대행사 미드미디앤씨의 이월무 사장은 "문화 요소를 가미한 별장이 팔리는 속도가 가장 빠르다"고 소개했다.

SM엔터테인먼트,영화감독 강제규,피데스개발 등은 경북 문경에 한류 주제 테마파크 '문경 영상문화관광 복합단지'를 개발 중이다.

피데스개발 관계자는 "팬 사인회 시설,레고형 숙박콘도,공연장,스튜디오 등 문화 콘텐츠가 가득한 가족형 테마파크"라며 "가요 영화 드라마 역사 등 영상 · 문화 콘텐츠로 차별화해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관광객을 끌어들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성북2재개발구역,은평뉴타운,목포 남악신도시 등에선 아파트와 함께 한옥이 들어설 예정이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한옥적 요소를 가미한 아파트 평면 4개 타입을 개발해 하남 감일 3차보금자리지구에 시범 적용할 계획이다.

LH 관계자는 "한옥형 아파트는 전통 주거문화를 확산시키면서 다양화된 소비자 욕구를 충족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