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도 안되는데 금리인상까지…아파트 한채가 짐 될 줄이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사는 김모씨(80)는 5년 전 재건축한 아파트 264㎡(80평형)를 보유하고 있다. 재건축을 하기 전부터 약 30년을 같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이 아파트의 시세는 현재 30억~40억원에 달한다. 남들이 보기엔 강남 한복판에 중대형 아파트를 소유한 대단한 부자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은퇴를 한 김씨는 집 외에 별다른 재산이나 소득이 없다. 입주할 당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충당했던 추가 분담금 2억원에 대한 이자를 내기에도 살림이 빠듯한 형편이다. 이 때문에 집을 담보로 생활자금을 매달 연금처럼 받을 수 있는 역모기지론(주택연금)을 신청하려고도 해봤다. 그러나 9억원을 초과하는 고가 주택에 대해서는 역모기지론을 승인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씨는 "지금 같은 경기에 집을 내놔봐야 팔리지도 않고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금리 인상까지 겹쳐 이중고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강남 부자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재산 대부분이 주택이나 토지 등 부동산으로 구성돼 있다 보니 유동성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것. 특히 한국은행이 지난 9일 기준 금리를 인상하면서 강남 부자들의 위기감도 점차 커지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옛 주공2단지)에 거주하는 박모씨(72)는 김씨와 거의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그가 소유한 198㎡(60평형)대 아파트의 시세는 25억~30억원 수준. 입주를 위해 잔금 3억원을 대출 받은 박씨가 매달 내야 하는 이자는 120만원에 달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수천만원에 달하는 종부세까지 내야 했다. 은퇴 이후 연금을 받아 생활하는 그로서는 큰 집이 오히려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박씨는 "아파트 한 채 달랑 갖고 있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며 "금리가 앞으로 더 올라간다는데 정말 한계 상황에 내몰리는 게 아닌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이파크에 사는 정모씨(68)도 대표적인 집 부자다. 서울 개포동 목동 등에 소유한 집만 7채에 달한다. 가격을 단순 합산만 해도 총 가치가 100억원을 훌쩍 넘는다. 하지만그 역시 최근 한없이 추락하는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속만 태우고 있다.

정씨는 "얼핏 부자인 것처럼 보여도 실상 대출이나 전세금을 빼고 나면 별로 남는게 없다"며 "손해를 좀 보더라도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집 몇군데를 내놨지만 매수 문의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대론 다 죽는다…정부 대책 절실

전문가들은 현재 거래가 아예 실종돼 버린 주택시장을 되살릴 수 있는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고준석 신한은행 갤러리아팰리스 지점장은 "현재 부동산 시장은 정상적인 상황으로 보기 어렵다"면서 "집값 상승을 최소화하되 거래를 활성화할 수 있는 정부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 지점장은 "특히 은퇴한 1주택자에 한해 양도세나 보유세 부담을 완화해주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고득성 SC제일은행 삼성PB센터 부장도 "이대로 가다간 자칫 주택 시장 자체가 붕괴할 우려도 있다"며 "어차피 집도 개인에게 중요한 자산인데 물가상승률 정도의 집값 상승은 용인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올해 말로 끝날 예정인 양도세 중과 유예 조치를 내년 이후로 연장해 퇴로를 열어주는 대책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연구소장은 "부동산 거품이 한꺼번에 터질 경우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할 위험성이 높다"며 "부풀려진 가격이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도록 정책적인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