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의 달인'이라는 평을 듣는 두 명의 대형 건설사 최고경영자(CEO)가 뜨거운 경쟁을 벌이고 있다. 1950년생 동갑내기로 지난해 3월 취임한 김중겸 현대건설 사장과 지난 1월 지휘봉을 잡은 정연주 삼성물산 사장 얘기다. 정 사장은 김 사장이 취임 이후 휩쓸어온 국내 재개발 · 재건축 공사 수주를 올 들어 역전시켰다. 현대건설은 눈을 밖으로 돌려 원전 등 굵직굵직한 해외 공사를 따내고 있다. 삼성물산도 해외 공략에 나서면서 두 CEO 간 대결 무대도 해외로 옮겨가고 있다.

◆재개발 · 재건축 시장 '파란색 반란'


4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올 들어 5000억원이 넘는 국내 재개발 · 재건축 물량을 수주했다. 서울 정릉6구역을 비롯해 가재울5구역,안양 비산2구역 등 서울과 수도권 지역 노른자위 공사들이다.

대우건설과 공동 수주한 안양 비산2구역 수주액을 사업비의 절반만 잡아도 수주 실적은 5250억원에 달한다. 올 들어서는 국내 건설사 중 최대 규모다. 건설업계에 "재개발 · 재건축 사업지구들이 올 들어 파란색(삼성물산 로고색)으로 물들고 있다"는 얘기가 퍼질 정도다.

작년까지 재개발 · 재건축 시장에는 '녹색(현대건설 로고색) 깃발'들이 펄럭였다. 3조1292억원어치의 재개발 · 재건축 물량을 수주,삼성물산(1조9629억원)은 물론 2조원대에 그친 GS건설 대우건설 등 다른 경쟁사를 압도하며 시장 1위에 올라섰다. 건설업계는 당연히 저돌적으로 밀어붙여 목표를 달성하는 '김중겸 리더십'을 주목해 왔다.

올 들어 삼성물산이 재개발 · 재건축 사업장 곳곳에 '파란 깃발'을 꽂은 것도 '정연주 효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 사장은 2003년 시가총액 1340억원이던 삼성엔지니어링의 경영을 맡아 6년 만에 4조6000억원대 회사로 키웠다. 취임 후 회사 가치를 무려 35배나 불렸다는 계산이 나온다.

'정연주 효과'의 근원은 공사 수주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정 사장이 취임한 이후 수익성 높은 사업에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된다"며 "과거 래미안 돌풍을 되찾고자 하는 직원들의 열정이 상승 효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전 · 태양광 등 해외 시장서도 진검승부

두 CEO의 정면 대결은 해외로 옮겨가고 있다. 국내 시장 침체를 해외 수주로 뚫으려는 전략이 맞부딪치고 있다.

해외 행보는 김 사장이 한걸음 빨랐다.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돈 되는 주택 공사가 줄어드는 국내 시장 상황을 먼저 체험한 때문이다. 김 사장은 취임 후 중동 동남아시아 유럽 등 물량이 나올 만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작년에만 11차례의 출장을 소화하며 27개국에서 총 44일을 머물렀다. 최고경영자의 적극적인 공세를 바탕으로 현대건설은 작년 말 아랍에미리트(UAE)에서 3조5112억원 규모의 원자력발전소를 수주하는 성과를 거뒀다. 해외는 아니지만 지난달 신울진 원전 1,2호기도 따냈다. 올 들어 재개발 · 재건축 공사를 단 한 건(600억원 규모) 수주하는 데 그쳤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 사장도 해외 공략에 가세했다. 현대건설과 함께 UAE 원전 시공(규모 2조8728억원)에 참여한 것을 비롯해 캐나다 태양광발전소와 풍력발전소 수주를 계기로 포문을 열었다.

건설담당 애널리스트인 이광수 한화증권 연구원은 "김 사장은 현대건설 주택사업본부장과 현대엔지니어링 사장을 거쳐 국내외 주택 및 플랜트 등 분야에서 축적한 풍부한 노하우를 활용하고 있다"면서 "정 사장도 적극적인 공세를 통해 그동안 취약했던 삼성물산 해외 부문을 크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두 CEO 모두 수주에는 탁월한 인물이어서 해외 시장으로 나가면 국가 이익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