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 재건축 추진위가 취소 또는 무효화되는 사례가 잇달아 나오는 것은 국토해양부가 재개발 · 재건축 제도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2003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을 제정하면서 사업 진행 순서를 명확하게 정하지 않아 '추진위 설립 시점'에 대한 혼선이 빚어지자 같은 해 9월 '추진위를 먼저 만들어도 된다'는 취지의 지침을 내렸다. 이 지침에 따라 재개발을 추진해 온 주민들이 결과적으로 소송에 휘말리게 된 셈이다.

◆재건축 · 재개발 사업 어떻게 되나

이번 법원의 판결은 모든 추진위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해당사자가 소송을 걸어야 법원이 판단을 해준다. 소송이 없으면 사업은 정상적으로 진행된다.

만약 법원이 무효 또는 취소 판결을 내리면 사업을 원점에서 다시 추진해야 한다.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곳은 시 · 군 · 구청의 구역지정을 기다렸다가 추진위를 만들어야 하고,구역지정이 됐다면 추진위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이 경우 사업이 지연될 뿐만 아니라 추진위 재설립 비용도 추가적으로 들어간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수익성이 떨어지는 지방 사업장과 양호한 단독주택 비중이 높은 곳에서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곳은 재개발 · 재건축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이 많기 때문이다.

법원의 판결에 대해 추진위 관계자들은 "법원이 현실을 무시한 채 지나치게 법리적으로만 판단했다"는 볼멘 목소리도 내고 있다. 서울 성북구의 A추진위 관계자는 "구역지정을 받으려면 누군가가 나서서 구역지정에 필요한 설계용역 등 사전 준비작업을 해야 한다"며 "미리 추진위를 만들지 않으면 재개발 · 재건축사업이 구조적으로 어려웠던 당시 상황을 법원이 감안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설립 무효' 소송 어디까지

도정법이 시행된 2003년 7월부터 추진위 설립 시기를 법에 명시한 2009년 2월 사이 구역지정에 앞서 추진위를 만든 곳들이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이 기간 중 추진위를 만든 곳이 전국적으로 700~800개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실제 서울 200곳 이상,인천 140곳 이상이 구역지정 전에 추진위를 설립한 것으로 추정됐다.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 입장에선 추진위 설립 승인 이후 90일 이내라면 '취소' 소송을 ,90일을 넘겼다면 '무효'소송을 낼 수 있다.

다만 '이미 조합 설립 단계까지 사업이 진행된 경우 하자가 치유된 것으로 봐야 하느냐'는 부분에 대해선 다시 한번 법원의 판단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재개발 · 재건축 전문인 천지인합동법률사무소의 남기송 변호사는 "추진위와 조합은 완전히 다른 법인격체이며,조합이 구성되면 추진위는 해산한다"며 "조합이 설립됐다면 하자가 치유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률사무소 국토의 김조영 변호사는 "선행 절차가 잘못된 만큼 처음부터 다시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며 "추진위가 조합으로 전환한 경우에도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아봐야 명백한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훈 대법원 공보판사는 "소송이 발생한다면 1단계로 하자가 치유됐다고 볼 만한 사안인지에 대한 판단이 이뤄지고,2단계로 어느 정도를 하자가 치유된 수준으로 봐야 할지에 대한 판단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